자유의 땅 " 몽 골 " - 1장
이 이야기는 나의 오래된 추억 상자 속, 가장 빛나는 기억에서 시작된다.
왜 몽골 인가?
지금도 ‘몽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젊고 활기차고, 무서움이 없을 때이다. 10년 전의 나이이니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 나라는 사람은 여행에 목말라하는지! , 한국이 아니 다른 곳을 가고파 하는지~~~~
몽골에 가기 전에 난 대학시절에 영어에 환장했다고나 해야 할까~~~
부산에서 태어나, 홀 어머니에 가난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정말 가난이 싫었다. 왜 어릴 때부터 가난의 굴레에서 살아야 했는가!
고등학교 때부터 가난해서, 용돈 벌기로 신문배달을 했고, 대학교 때에도 계속해야만 했다.
나에게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영어 배우기였다.
그때는 영어의 문법과 어휘보다, 난 외국인과의 프리토킹에 많은 시간 내어 배웠다.
그때는 그냥 영어가 재미있었다.
그래서 캐나다 해외 어학연수도 가게 된다.
캐나다 어학연수가 제일 먼저 내가 외국 생활과 경험을 하게 된 첫 번째이다.
그런데 왜 몽골부터 첫 장이 시작이 될까?
지도를 보게 되면 몽골은 상당히 북쪽에 있다.
그래서 많이 많이 추운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땅과 비교도 안되게 굉활하다. 무지막지하다 땅 넓이가 ~~~~
그래서 포장도로보다는 비 포장도로가 더 많고, 도로가 아닌 off- road가 천지다.
'천지다'는 경상도 사투리로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몽골의 오프로드는 말 그대로 ‘천지삐까리’였다.
2014년 8월쯤에 정말 우연스럽게 몽골에서 창호 관련 공사 관리자를 구한다는
잡코리아에서 공고를 보게 된다.
그때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그만두고 있었던 터라, 구직을 계속하고 있었던 상황이였다.
영어와 창호 공사 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 나에게 정말 좋은 자리였다.
난 이상하게 외국으로 가는데, 거부감이 없다. 두려움도 없다.
누구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조율하고 하지만~~~
그게 대학 때부터 영어의 영자도 모르면서 프리토킹만 배운 나의 돌끼라고 나 할까!
그땐 돌끼 + 내속에 있는 것이 나를 이 한국에만 두지를 않았다.
그때 나는 결혼한 지 4년이 된 가장인 상태였다.
" 공기에 티끌의 먼지도 없는 몽골의 겨울 풍경 - 다시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