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의도

「꿀벌 인간」

by 다감
「OO인간」시리즈는 인간의 다양한 유형을 새롭게 정의하며,
그들의 행동 뒤에 숨은 심리를 탐구하는 콘텐츠입니다.


주변에 이런 사람 있지 않나요?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먼저 배려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먼저 친절을 베풀며,

“괜찮아?” “도와줄까?”가 기본 탑재되어 있는 사람.


말 한마디에도 따뜻함이 묻어있는 그런 사람.

그들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 즐깁니다.

내가 쓸모 있다는 감각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사람 곁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들의 존재는 늘 고마움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돕고, 챙기는 걸까.

단순한 친절일까, 아니면 그 안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꿀벌은 꿀을 얻기 위해 꽃들 사이를 날아다닙니다.

그건 철저히 자기 생존을 위한 본능이죠.


그 과정에서 꽃가루가 몸에 묻고 다른 꽃으로 옮겨지면서

새로운 씨앗이 만들어집니다.

살기 위한 움직임이 세상을 살리는 일이 되는 겁니다.


「꿀벌 인간」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건 결국 자신이 사랑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목적성이 누군가에겐 부정적으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관계를 이어가게 하고,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만든다면,

그건 가장 선한 형태의 이기심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사람들을 「꿀벌 인간」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정의》

「꿀벌 인간」

1) 도움을 주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는 사람

2) 타인을 위한 선의를 세상의 선순환으로 이어가는 사람



《페르소나》

444.png 하민(35) / 은행원 / ENFJ


Scene #1 — “아까 말 안 했죠?”


회식 자리였다.

팀원 여섯 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앞쪽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지고,

중간쯤에서는 잔이 오가며 대화가 이어졌다.


그중 한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질문이 오가도 웃기만 하고,

말을 꺼내려다 타이밍을 놓치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극 I였다.


하민은 그런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누군가 대화에 끼지 못하는 것 같으면

신경이 쓰이고, 괜히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그래서였다.

“아까 그 얘기할 때 말 안 했죠? 생각 있으셨을 것 같아서요.”

하민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순간 테이블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사람은 살짝 놀란 듯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 그냥,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셔서요.”


하민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도 혹시 다른 아이디어 있으셨으면 듣고 싶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용히 의견을 덧붙였다.

“그… 지난번처럼 팀을 조금 나눠보면 어떨까 해서요.”


“그거 괜찮다.”

하민이 맞장구치자,

주변에서도 “오, 그 방법 좋네요.” 하는 말이 이어졌다.


분위기가 다시 부드럽게 흘러갔다.

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웃음이 번졌다.

하민은 옆을 흘깃 봤다.


그 사람의 어깨가 조금 풀린 듯 보였다.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조용히 놓였다.



Scene #2 — “괜찮아, 진짜 괜찮아”


퇴근 무렵, 남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밝았다.

“오늘 애들이랑 잠깐 보기로 했어.

다들 오랜만이라 얼굴 좀 보자고 하더라.”


하민은 웃으며 물었다.

“그래? 술도 마셔?”


남자 친구는 자연스레 말했다.

“아마 조금 마시지 않을까.”


“누구누구 나와?”

“음… 민수, 태훈. 아, 지연이랑 수지도 온대.”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하민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지연 씨랑 수지 씨도?”

“응. 오랜만이잖아, 그때 팀이 다 같이 모이는 거라.”


“아, 그렇구나. 재밌게 놀다 와.”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가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의 마지막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하민은 괜히 물 잔을 씻었다.

식탁 위에 있던 컵 하나를 닦고,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었다.

남겨진 문자

조금만 있다가 들어올게

이미 한 시간을 넘긴 시간이었다.


하민은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톡을 보낼까 하다가, 그냥 화면을 껐다.

대신 메모장에 짧게 썼다.


‘괜찮다는 게 꼭 괜찮다는 뜻은 아닌데...’


라는 말은 차마 보내지 못했다.

대신 새 메시지를 열고, 손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어? 난 피곤해서 먼저 잘게 연락 남겨줘ㅎㅎ


그녀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 폰을 뒤집었다.

그 행동엔 체념도, 다정함도 섞여 있었다.


하민은 늘 그래왔다.


마음 한쪽이 시리면, 그 자리를 따뜻한 말로 덮었다.

그게 그녀가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꿀벌 인간은 이런 사람입니다》


진짜 성숙은 ‘무욕’이 아니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입니다.

내가 돕고 싶은 이유는 단지 그 사람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사실.

그걸 인정하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나쁜 마음이 아니라, 어떤 사람보다도 따뜻한 사람의 욕망이니까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나의 욕망을 드러내도 괜찮습니다.

그건 세상을 이어주는 이타적인 이기심이니까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꿀벌처럼요.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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