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해가 밝아왔다.
체감상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하는 것 같다.
1월 1일 해가 뜨는 걸 보면서 26년을 기대했던 그때가 진짜 같고, 2월 17일 새해는 가짜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이야기를 건네며 다시 한 해를 시작한다. 딱히 와닿지가 않아서 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2.
출판사에 들어왔다.
돌고 돌아 경력을 살려서 경영지원팀으로 들어왔지만,
이 세 글자의 단어는 일주일 내내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충분했다.
명함이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받으러 가질 않나.
지금도 내 카카오톡 배경화면 사진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한 달이 딱 된 지금,
여느 회사와 별반 없다는 말이 체감되는 요즘,
이 세 글자가 가진 힘을 점점 잃어가게 될까 불안해하는 요즘이다.
#3.
5개월 반을 쉬고 다시 취직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황금연휴지만, 마음은 제대로 못 쉬고 있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겠다며 훌쩍 서울로 도망쳤지만,
어디든 마음을 못 붙이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가고 싶었던 카페 리스트를 괜히 뒤적거리고 있다.
너무 많이 쉬어서,
쉬고 있으면 그때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은
불안함일까?
떠오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다시 카페에 들어와 무작정 태블릿을 켜고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 하루가 적응되지 않는다.
#4.
일하고 있는데 이전 직장 친했던 이사님께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안부 인사를 전하다 이사님이 말한다.
다시 돌아오면 안 되겠냐고.
당연히 안되죠, 돈 많이 주실 거예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속으로는 들뜨는 마음을 감추기 바빴다.
나 그래도 잘했구나, 한 사람이라도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동안에 인정받고 싶어 발버둥 쳤던
내가 잠잠해지는 기분.
내 인정 욕구는 몇 살까지 가려나...
#5.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쓰고 싶은 것도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좀비처럼 당장의 우선순위를 쳐내가는 기분...
일하고 싶지만 일하기 싫은 이 오묘한 기분...
#6.
문득 걷다가 생각한다.
사람의 우선순위라는 건 상황에 따라
참 쉽게 변하는구나 하고.
24살 겨울, 저녁,
사랑이 1순위라는 선배와
일이 1순위라는 선배의
침 튀기는 논리들을 들으며
삼겹살을 먹었던 그 밤이 종종 생각난다.
#7.
책 나눔 게시물을 올렸더니
일주일새 팔로워가 200명이나 늘었다.
자고 일어나면 늘어있는 숫자에 광대가 승천한다.
아예 책 나눔 계정으로 바꿔버려?! 하고
스치듯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접었다.
근데, 아직도 나눔 할 책들이 한가득이다...
#8.
남자친구네 카페에 자주 오는 앵집사들과
함께 연휴 때 저녁을 먹었다.
메뉴를 시키고, 잠시 서로 눈치를 보고, 침묵하다가
술 한 잔 할까요?라는 말에 눈을 반짝인다.
그렇게 한 병, 두 병, 세 병.
2차까지 가자는 내 말에 그들은 군말 없이 어울려줬다.
재밌었고, 밤이었고, 행복했다.
어떤 날은 깊은 사이보다 얕게 아는 사이가 더 재밌다.
서로 더 알고 싶어 하기보단, 현재에 집중하는 기분.
우리는 너무 미래를 생각하며 피곤해한다.
#9.
종종 사소한 걸로 틀어진 관계가
'그땐 미안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것이 같으니
다시 서로 그 이야기를 하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건 어떠실까요?'
라고 깔끔하게 정리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현실이 묻어버리면 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