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이 책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외침에 혼돈에 빠졌다. 아버지는 삶의 의미를 묻는 자신의 딸에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개구지게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딸아, 삶은 의미가 없고 너는 중요하지 않단다. 이게 정녕 아버지가 딸에게 전할 인생의 지침일까? 허나 그녀는 아버지의 도덕률을 이해하려 애썼다. 이 세상의 모두가 중요하지 않지만, 타인을 중요한 것처럼 대해야 한다. 언뜻 보면 그럴듯했다.
책의 초반부는 위인의 전기를 훑어내리는 것 같다. 책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려 애썼다. 유명한 분류학자의 흔적을 더듬어 보면서, 자신만의 삶 속 의미를 찾으려 했다. '스타' 조던은 별을 분류하고, 물고기를 분류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분류했다. 그중에서도 물고기를 보자. 그것은 그가 평생을 바쳐 분류하고 이름을 붙여오던 것이다. 수 천 가지 물고기의 이름을 알아내고 이름표를 붙였다. 하나하나 붙였다. 세상에! 지진으로 그가 평생을 바쳐 붙여온 이름표들이 엉망이 되어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물고기의 살갗에 이름표를 꿰맸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분명 피상적이고 무모한 도전이다. 지진이 아니라 해일이 덮쳐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데이비드의 방식에서 끈기를 찾는다. '그릿'이라고 했던가? 대충 그런 삶의 자세 말이다.
그렇게 그의 삶을 쫓았다. 분명 그는 그녀의 롤 모델이었는데, 삶을 더듬다 보니 온통 의문 투성이다. 모두가 독살로 죽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제인. 그는 어떻게 제인이 독살로 죽은 게 아니라고 확신했을까? 왜 터무니없는 폭식이 그녀는 사인이라 확언할 수 있었던 거지? 스트리크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가? 아니, 이건 뒷 사안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다.
그는 왜 우생학을 주장했을까?
그는 어떻게 우생학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한때 미국을 덮쳐왔던 우생학은, 글쎄, 누군가에게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부적합한 인간은 대를 이어서는 안 된다! 그럼 사회가 썩어버릴 거야! 데이비드는 그걸 대의라 여겼다. 이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적합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무슨 권리로?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적어도 그와 같은 실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애나 또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수많은 사람 중 하나다. 아이와 가정을 원했던 그녀는 자칭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그들에게 부적합 판정을 받고, 임신할 권리를 빼앗긴다. 그 과정에서 폭행, 감금, 강간... 사람으로서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것들이 행해졌지만 우월한 그들에겐 아무래도 그런 건 괜찮았나 보다. 건너편 독일의 우월한 누군가도 우생학에 푹 빠져 있었더라지. 주인공은 애나의 손을 잡고 다짐한다. 데이비드를 무너뜨리고야 말 것이라고.
일단은 아버지의 말에 반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까? 위대한 진화론자 다윈의 말을 빌려보자.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생물에게는 우리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숨어 있다. 우생학의 관점에선 우리는 아무도 중요하지 않고, 의미도 없을지언정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선 한 사람이 가지는 의미가 훨씬 더 깊고 중요하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의미는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 가치를 매기는 절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아버지의 인생 지침을 기세 좋게 넘어뜨렸다.
우리는, 나는 중요하다고요!
누군갈 향해 열등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애나에게 아이를 낳을 권리를 빼앗는 것. 피부색을 이유로 버스에 올라타지 못하게 하는 것.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공동체에서 고립시키는 것. 인간에겐 확실한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우생학의 논리다. 이 대단한 우생학을 칭송했던 데이비드를 무너뜨린 것은, 소금 길을 걷는 대단한 인권 운동가도, 국기를 펄럭이며 총을 쏘는 민주주의 수호자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잔인한 방식으로 그를 넘어지게 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손으로 직접 자멸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자연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그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범주. 지진으로 분류해 놓은 물고기가 쏟아져도 다시 살갗에 이름표를 붙일 만큼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억겁의 시간을 바쳤던 그 범주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인간의 편의성을 위해 바다 아래로 몰아넣었던 어류라는 범주는 단 한 번도 실재한 적이 없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게을러서 물고기를 만들었다. 생물 간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곧 타종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물고기를 만들었다. 다른 생물에 대해서만 그럴까? 인간 사이에서도 계층을 만들었다. 자기들 입맛에 맞춘 기준에 따라 누군가에게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강제로 불임 수술을 진행했다.
물고기의 탄생은 곧 우생학의 시작이다.
주인공이 데이비드를 쓰러뜨릴 것도 없이 그는 자연의 손에 무너졌다.
대자연이 일렀거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코페르니쿠스는 별들을 포기했을 때 이단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갈릴레오가 별들을 포기했을 때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별들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었고, 옳은 천체학적 연구의 방향성을 설정했다.
우리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다르다. 그게 왜? 어깨를 으쓱이며 책상 옆 사탕을 집어먹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와! 하며 식탁에 있는 소시지 반찬을 치워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물고기를 포기하는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관계가 있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주인공은 물고기를 포기하고 그녀가 줄곧 찾아왔던 희망에 대한 처방을 얻었다. 잔인할 만큼 차가워 보이는 수학 속에 일종의 우주적 정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물고기를 포기하고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사람에게는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철학적 논의가 벌어지려나, 생각했던 책의 제목은 과학적인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정보다. 사과는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는 둥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 자체가 허구라는 것은 도통 믿을 수 없었다. 책에 적혀 있는 많은 예시와 설명을 보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고 있던 상식에 대한 믿음. 그게 깨지는 순간 이 책의 전체 구성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아버지의 이야기, 데이비드의 삶, 미국의 우생학, 우생학을 옹호했던 데이비드와 강제 불임 수술을 당한 애나의 이야기... 잠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와, 고개를 치켜들었다. 놀라울 정도로 글의 구조가 잘 갖춰져 있다. 글의 전개도가 머릿속에 차례대로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하다 여겨왔던 과학적 사실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연구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이 될 것이다.
아,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p.89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p.93
명명의 의미를 되짚어 보자.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앞선 두 구절을 읽으면서 김춘수의 '꽃'이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 시에서 시적 대상의 의미는 하나의 몸짓, 꽃, 무엇, 하나의 눈짓으로 점점 확장된다. 그저 익명에 불과했던 '그'는 화자에게 이름을 불림으로써 구체성을 얻고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된다. 나는 책의 구절과 김춘수의 시를 연결하면서 명명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곧 관계의 정립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로맨틱한 것일지도?
하지만 이 책의 후반부를 달릴 때면 명명의 폭력성을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물고기를 분류하고 이름 붙임으로써 그들을 한 곳에 묶어버렸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p.250
책은 명명의 의미를 제대로 뒤집어 버린다. 애나는 물고기를 포기하는 일이 '부적합'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게 아니냐고 주인공에게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물고기에 대한 연민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물고기에서 시작된 분류와 명명의 폭력성은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일 테다. 하얀 피부색을 가진 자신이 누군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은 유전적이고 과학적인 정보일 뿐이라 정당화한다. 우월한 유전자는 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사다리다. 물고기를 포기하는 일은 그 사다리를 부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자연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보다 경계가 없고, 포괄적이고, 자유롭다. 사람은 가치는 재단할 수 없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속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p.263
밀러가 위안받은 일종의 우주적 정의의 판타지, 나도 그것에 매료되었다.
우리는 모두 중요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