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탈출의 순서는 지능순
구정 연휴가 끝난 첫날,
회사는 새해 인사 대신 소문으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복 많이 받으라는 말 대신
“들었어?”로 하루를 시작했다. 책상 위에 사표 두 장이 올려져 있었다.
한 장은 예상 가능한 이름. 그리고 다른 한 장은, 모두의 입을 벌어지게 한 이름. 또또.
더 흥미로운 건 사직서보다 그 안에 끼워진 편지였다.
빛을 피해 도망 다니던 또또를
양지로 끌어올려 이력서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스펙을 채워준 건 진고동이었다.
직원들의 경고와 의심을 모두 무시하고
마지막까지 “내 사람”이라 믿었던 그에게, 또또는 편지 한 통을 남겼다.
종신계약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장,
그리고 사장의 ‘친구’ 회사로 떠난다는 차분한 통보
의리는 지키지 못했지만, 인맥은 정확히 계산한 선택이었다.
빛을 만들어 준 사람을 뒤로하고 그 빛으로 갈 수 있는 더 넓은 무대로 옮긴 셈이었다.
배신은 보통 감정의 결과라고들 하지만, 이 선택은 감정보다 계산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 계산은 참으로 깔끔했다.
사업자를 조회해 보니 더 흥미로웠다.
업태도, 업종도, 방향도 우리 회사와 기가 막히게 닮아 있었다.
벤치마킹이 이렇게 노골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복사는 창의력보다 빠르다.
진고동은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척했다.
“문제였던 친구가 나가줘서 다행이지.”마치 오래 묵은 고름이 빠진 것처럼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체념인지, 계산인지 알 수 없었다.
또또는 마지막 날까지도 떠나는 사람 같지 않았다.
사표를 낸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큰 소리로 웃고, 다시 올 거래처처럼 말하며,
누군가는 말했다.
탈출의 순서는 지능순이라고.
그렇다면 그는 가장 영리한 선택을 한 걸까.
하지만 나는 알았다.
배가 기울 때 가장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과, 끝까지 선실을 지키는 사람의 지능은
결이 다르다는 것을, 타이타이호는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만의 추측과 본능으로
그는 탈출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이름을, 누군가는 배신이라 불렀다.
법인카드로 맺은 인연들, 이익으로 묶인 관계들, 그 몇몇을 데리고 그는 다른 배에 승선했다.
그 배가 얼마나 멀리 항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퇴사하는 날, 론사나가 회사를 찾았다.
또또에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잡고 말했다.
“오래 근무하시길 바랍니다. 같은 업계니까 또 보겠죠.
타이타이호를 떠나는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 말은 이상하게도 축하 같지 않았다. 작별 인사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회사는 창립 이후 가장 큰 수주를 발표했다.
회의실 공기가 달라졌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표정이, 한순간에 갈라졌다.
누군가는 배에서 내렸고, 누군가는 갑판 위에 더 단단히 섰다.
항해는 계속된다.
폭풍이 오든, 돛이 찢어지든,
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 한. 타이타이호는 오늘도 방향을 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배를 떠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남은 사람이 항로를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안다.
언젠가 나 역시 이 타이타이호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아니다.
기울었다고 먼저 뛰어내리는 방식도, 계산이 끝났다고 등을 돌리는 선택도 아닐 것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배의 선장과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끝내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조용히 준비한다.
누군가의 그림자로 옮겨 타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서기 위해.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그날은 탈출이 아니라 정리일 것이다.
등을 돌리는 순간이 아니라 고개를 들고 방향을 바꾸는 순간일 것이다.
타이타이호는 그들의 방식대로 항해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믿는 바다를 향해 조용히 노를 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