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보다 잘할 수 없는 것

내가 일 년 동안 쉬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

by forever young

AI가 인간보다 못하는 것


바로 노는 것이다.


노는 것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다. 노는 방법을 물어보고나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 수는 있어도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노는 것과 같은 것을 실행시킬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에겐 수단인 일이 인공지능에겐 목적이기 때문이다.


Express inexpressibles!


쉬는 일 년, 글쓰기를 멈췄던 것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이 없어서였다. 나름 지적인 글, 정보와 통찰,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자! Express inexpressible!'을 표방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AI는 나를 멈칫하게 했다. 알파고에 패배한 이세돌이 바둑을 그만둔 것처럼, 나도 AI에게 글쓰기를 시켜서 그것을 옮기는 수준의 글을 올린다면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다. 그래서 그동안 업로드는 멈추고 글감 구상을 하고 AI의 도움을 받으며 자료를 꾸준히 모아 왔다. 그러다 마침내 도달한 결론은 내 글은 AI가 쓴 글과는 분명히 다르고 쓸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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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따라 하기엔 너무나 비대한 나의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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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비대하다'는 말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유행하게 된 말로 실존적 자아가 현존재를 압도한다는 의미다. AI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위협하면 할수록 실존주의가 재조명되며 사람들의 자아가 점점 비대해지지 않을까 싶다. 신학의 시대에서 실존의 시대로 넘어갈 때처럼. AI시대를 대처하는 인간의 돌파구가 실존의 욕망을 추구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 본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사회의 기능에 일부분, 더 나은 수단이 되는 것을 욕망해 온 개개인이, 스스로의 진정한 욕망을 목적으로 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과 가장 가까운 것이 '노는 것'이다. 즐기는 것.


그러면 분명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러면 돈은 어떻게 벌어서 어떻게 먹고사는데?" 지난 일 년간의 내 경험이 여기에 조금의 답이 되었다.


"왜 지금껏 나를 가뒀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왜 지금 나를 풀어줬냐고 물었어야지!" - <올드보이>


내가 지금부터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글을 일 년 넘게 안 쓴 이유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지금은 왜 쓰냐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도 돈을 벌고 먹고사는 방법을 찾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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