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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을 탐하다

중남미 문화원 병설 박물관

by 일계

미술관과 박물관은 예술 작품과 역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깊은 심미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림, 조각, 유물 등은 단순한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성과 역사적 기억을 담은 상징으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단순한 감상이 아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이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정신적 고양의 기회를 제공하며, 미술관과 박물관을 성스러운 장소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연결감을 제공한다. 고대 유물이나 수백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을 마주할 때, 나는 과거와의 대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인류의 역사를 체험한다. 이는 현세를 넘어서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영원성에 대한 생각을 자아낸다. 이러한 연결감은 나를 더 큰 세계의 일부로 인식하게 하고, 나에게 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미술관과 박물관은 조용하고 깊은 성찰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조용한 환경 속에서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감정과 생각들이 떠오를 수 있게한다. 예술은 나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동일하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며, 그 순간이 일상의 성스러운 의식이 될 수 있다.

중남미문화원 병설 박물관은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독특한 중남미 테마 공간이다,

현재의 박물관은 설립자인 이복형 원장이 30여 년 동안 중남미 지역 4개국 공관장을 지내며 은퇴 후까지 4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중남미 고대 유물, 식민기, 근·현대 미술, 조각 작품 등이 전시된 아시아 유일의 중남미 테마 문화 공간이다,

이곳의 중심부에는 스페인식 돌 분수대와 금빛 태양 조각이 돋보이며, 중남미 문화의 상징성과 자연 채광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박물관 안에는 마야, 아즈텍, 잉카 등 중남미 문명 유물과 현대 미술 작품이 약 3,000점 이상 전시되어 있어 중남미 예술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야외 조각 공원과 종교 전시관은 자연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종교 전시관 내부에는 중남미 전통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조경 또한 중남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곳곳에 배치된 조각상과 건축물들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카페 따꼬에서는 멕시코 음식을 즐기며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중앙홀에 들어서면 먼저 스페인 양식의 돌로 만들어진 분수대를 볼 수 있다. 스페인식 성당이나 큰 저택에서는 중앙홀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분수대를 즐겨 만들었다고 한다. 문화원의 분수대는 잔잔한 라틴 음악과 어울려 넓은 홀 안에 중남미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홀을 둘러가면서 사면의 벽에는 성화와 성물들, 그리고 조각품들이 있고 150년 된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이 피아노는 문화원에서 특별 행사로 열리는 음악회 때마다 그 아름다운 음색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 중앙홀 천장에는 나무로 조각한 금빛 태양상이 있다. 중남미인들에게 태양은 가장 주된 신봉의 대상이었다. 주변으로는 창이 있어 중앙홀 내부에 자연 채광이 이루어질 수 있게 설계되었다.

제1 전시관에는 중앙아메리카 엘살바도르 지역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엘살바도르에서 출토된 원주민 남녀 토우와, 당시 인디오의 얼굴형과 의상, 장신구 등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토우 속 여신은 다산의 상징으로 많은 아이가 달려 있으며, 머리 위에 있는 물고기가 다산을 상징하여 농경사회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

메소아메리카의 불과 시간의 신 우에우에떼오뜰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머리 위의 화로는 불을 상징한다. 이 신은 경험과 지식을 상징하며, 신성함을 지닌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즈텍의 탄생과 죽음의 신, 시페 토텍은 자신의 껍질을 벗어 희생을 표현하는 신으로, 이는 옥수수 씨앗이 발아하는 과정이나 뱀이 허물을 벗는 모습에 비유된다. 시페 토텍은 아즈텍 신화에서 탄생과 죽음, 풍요의 신으로, 이 신에게 인신 공양을 바치는 제의가 있었다.

제2 전시관은 따이노족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카리브해 아마존 지역의 따이노족이 사용했던 의례용 나무 의자 두오(Dujo), 따이 노인을 형상화한 돌 조각 쎄미(Cemi) 등이 전시되어 있다. 쎄미는 따이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숭배 대상이며,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져, 작은 크기는 개인이, 큰 것은 신성한 장소에 모셔졌다.

코스타리카와 멕시코 유물인 코스타리카 과나카스테 니꼬야 지방의 메따떼는 곡식을 갈거나 반죽을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멕시코 똘떼까 왕조 수도인 뚤라에서 께짤꼬아뜰의 석조물이 출토되었다. ‘깃털달린 뱀’ 께짤꼬아뜰은 바람과 예술, 지식의 신으로,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폭넓게 숭배되었으며, 아즈텍 문명과 스페인 정복사에서도 중요한 상징으로 남았다.

제3 전시관은 멕시코 원주민들은 가면을 통해 새로운 영혼과 교류하고 현실을 탈피하는 의식을 가졌으며, 또또낙 원주민들은 축제와 의식에서 가면을 사용했다. 다양한 색채와 모양의 가면은 성서 속 인물, 천사, 동물, 악마 등을 형상화하며, 멕시코 전역에서 제작되었다.

죽음과 부활의 가면, 뜰라띨코는 마야 문명의 대표 가면으로, 인간의 일생과 사후의 환생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것은 여닫는 구조를 통해 죽음 이후의 부활을 상징한다.

상설 전시관의 깐디도 비도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화가로, 태양과 강렬한 색채가 특징인 작품을 선보인다. <생명의 나무와 태양>과 같은 작품에서 노란색과 주황색, 청록색 등 화려한 색감을 사용했다.

프란시스코 수니가는 멕시코의 대표 조각가로 스페인 정복 이전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인디오 여인을 주제로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며, 비례를 과장하여 토착 문화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마리아 가요는 니카라과 출신 작가로, 가족과 사회를 주제로 몽환적 분위기를 표현한 작품을 남겼으며, 푸른색과 녹색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색조를 사용했다.

넬슨 도밍게스는 쿠바 출신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원시적이고 신화적인 느낌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붉은 독수리 가면>과 같은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리까르도 다빌라는 에콰도르 출신 화가로 자연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반영하여,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색채와 대형 캔버스를 이용해 안데스의 자연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다.

종교 전시관에 있는 레따블로 제단은 라틴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색채와 장식이 돋보이는 17세기 목조 제단으로, 멕시코 바로크 미술 대가 아구스띤 빠라가 제작하였다. 중남미 지역에 가톨릭이 전파되면서 바로크 양식이 도입되어 한층 화려한 라틴 바로크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꾸스코 유파 종교화는 페루 꾸스코 지역의 가톨릭 종교화로 금박과 빨강, 황색 등을 활용하며, 화려한 성모마리아 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종교화는 주로 무명의 예술가들이 제작하였으며, 안데스 지역 전역에 퍼져 있다.

야외에 설치된 마야벽화는 대형 도자 벽화로써 멕시코의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한 인디헤니스모 사상이 반영된 23m 길이의 대형 마야 벽화로, 마야 상형문자와 아즈텍 달력의 태양의 돌을 묘사하였다. 벽화는 고대 문명의 상징들과 함께 잉카의 사회제도, 풍속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중남미문화원 병설 박물관은 경기 고양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중남미의 문화와 예술을 전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 독창성에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의 매력은 입구부터 시작된다. 중앙홀에 들어서면 보이는 스페인식 돌 분수대와 잔잔한 라틴 음악은 중남미 특유의 고즈넉한 정취를 그대로 전달해 주며, 자연 채광으로 밝게 빛나는 홀은 금빛 태양 조각과 함께 활기찬 분위기를 더해 준다.

박물관 내부 전시관은 다양한 중남미 문명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엘살바도르 유물이 전시된 제1전시관에서는 토우와 신화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당시 인디오의 문화와 농경사회의 염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우에우에떼오뜰과 시페 토텍과 같은 신화적 존재는 중남미 문화가 가진 풍요와 재생의 상징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제2전시관에서는 따이노족 유물인 쎄미와 두오가 특히 인상적이었으며, 코스타리카와 멕시코에서 유래한 유물들은 당시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예술 작품 역시 다채롭다. 깐디도 비도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로 생명의 기운을 전달하고, 프란시스코 수니가의 조각은 인디오 여인의 형상에서 인류의 실존을 탐구하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마리아 가요, 넬슨 도밍게스, 리까르도 다빌라 등의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은 각각 독특한 색감과 상징을 통해 사회와 자연에 대한 시각을 전달한다.

야외로 나가면 중남미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조각 공원과 종교 전시관의 전시물들로 한층 강화되며, 마야벽화는 그 웅장함과 민족적 정체성이 인디헤니스모 사상과 함께 표현되어 중남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와준다.

이 박물관은 중남미 고대와 현대의 문화를 아우르는 풍부한 유물과 작품들로 중남미 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을 제공하였으며, 나에게는 잊지 못할 문화적 경험과 함께, 일상에서 벗어난 성스러움을 안겨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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