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my first Morocco. And -
12월 28일.
내 하늘의 초점을 조정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아쉽게도 모로코에서의 새해를 코 앞에 두고 말이지.
얼른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떠나는 나의 심정을 표현하자면,
이곳에서의 추억들로 온 마음이 축축하다.
마치 푹 젖은 스펀지처럼.
깊게 스며든 채 두고 떠나는 인연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이 찝찝하고.
딱 이 상태 그대로 지퍼백에 밀봉해서
한국으로 운송되어지는 느낌이다.
감이 오는가.
이곳의 공기를 다시 맡기 전까지는 마르지 않을,
여운에 젖은 나의 심정이-
언제나 칼 같이 흐르는 이 시간은,
어쩔 땐 참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처럼.
혹시 당신도 그런 나라가 있나요?
마음속에 다른 나라를 하나 더 ‘품게’ 될 때 느껴지는,
그 소중한 감정을 아시는지요.
어릴 적부터 꿈에 그려왔던 해외살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아까운 마음으로 소중히 보내왔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혹여나 상처받을까
아닌 척하며 지냈다.
그런 내게 경계를 허무니 사랑이 밀려오는 이곳은,
내게만 보이는 신기루 같았다.
나는 사랑에 약한데,
자꾸만 조건을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고 웃어주니까.
마치 겁 먹은 고양이를 정성껏 보듬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서툰 손으로 열쇠를 들고,
애써 문을 잠궈보려는 나의 마음을 열어서
나를 자꾸만 울컥하게 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이곳의 기운들이,
지난날의 내 상처에 연고가 되어주면서
내가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나만의 날들이 참 많았다.
힘든 게 아니라, 감사해서.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는 되물음도
마음속으로 꽤나 했다.
남미를 가고 싶어 하고 아프리카를 관심 없어하던 나를 반대로 뒤바꿔 놓았다.
기차를 타고 이 도시를 떠날 때면, 나타날 나의 인연들에 설레했다.
그들이 말을 건네면 시간 아까워하지 않고,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화답했다.
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어 보이면서.
스치는 인연에도 진심이었다.
종종 도움을 받으면,
그림이든 번역기든 표현하고 싶은 만큼 표현하면서.
모로코에서의 삶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티 냈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가,
당신들 때문이라는 것을 비언어적으로 쏟아냈다.
언어는 분명한 의사소통의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진심은, 언어를 뛰어넘는다.
우리에게는 모두 느껴지는 직감이 있으니.
부족한 언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나의 마음이,
다행히도 그들에게 전달된다.
다는 알아듣지 못해도,
그들의 반응이 어떤 온도를 품고 있는지-
나 역시 느껴진다.
그 결괏값은 쌍방의 행복.
서로에게 닿은 진심이 좋은 추억으로 남겨지는 경험을 계속 하니
차근차근 콩깍지가 씌여 버렸다.
한 겹이 아니라, 겹겹이.
팔은 안쪽으로 굽듯,
어쩌다 미운 짓, 황당한 일, 괘씸한 태도가 눈에 보이면,
극히 일부라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한 일들로 이 나라를 점수 매기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을 편애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으로
이 나라를 욕하는 사람들이 보이면,
욱하고는 했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고,
늘 나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닌데.
편파적인 내용을 담아 이목을 끄려는 게
다분한 모습이 보이면, 괜히 보호해주고 싶어졌다.
모로코를 왜 그렇게 까지 좋아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소중히 생각하는지.
지인들이 물은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
근데 그냥 사람들이, 모로칸들이 너무 친절하고 좋아. “라고 했었지.
나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다친 곳에 딱 발라야 하는 약을 발라주고, 새살을 돋게 만들어준 느낌’
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나를 찾도록 도와준 은인 같은 곳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부여되는 곳이다.
하물며 지금은 이 나라가 더는 낯설지 않고,
오히려 평온한 제2의 내 나라가 되었으니까.
그러니 내게 모로코는 그럴 가치가 있다.
잊을 수가 없다.
한국을 떠나도 이 지구 안에 내가 기댈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을 또 다른 나라가 생겼다는 것.
그런 나의 첫 나라, 모로코.
두 달만 기다려.
다시 돌아올게.
두 달간 한국에서 나는 어땠냐면,
장거리 노선이 늘 그렇지.
비행기 안에서 감은 눈을 뜨면 사육당하고, 양치하고 돌아와
다시 눈을 감고를 반복하니 ‘대한민국, 인천’이다.
‘한국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저 문구는,
언제 봐도 사람을 참 안심시켜 준단 말야.
나를 보호해 주는 곳으로 돌아온 느낌이 확 들게 하니까.
그렇다. 나는,
4달간의 카사블랑카 살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날씨 앱으로 날씨를 체크할 때면
늘 카사블랑카는 최저가 10도 안팎이었다.
그에 비해 서울은 영하였기에, 얼마나 추울까를 상상하며
캐리어 3개를 끌고, 공항버스를 타러 간다.
공항에서 나오니 뺨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
공기조차 한국이다.
공항버스에 몸을 싣고, 인천을 지나 김포, 강서구를
차례대로 타고 내려오면서 점점 거리들이 번화되는 것을 바라본다.
높은 빌딩과 한국어가 가득 적혀있는 간판들.
문명을 다시 맞이한 사람처럼 눈을 못 떼고,
한글이 이렇게 예뻤었나 싶어지는 순간.
이런 내가 웃기면서도, 아이 같아지는 지금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시야 속 배경은 아시안이 드문 모로코였는데,
지금은 렌즈가 바뀌고, 한국인들이 가득 길거리를 걸어 다닌다.
무성히 길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 참 자연스럽고,
하나하나가 새롭고 예뻐 보인다.
지난 몇 달간의 내 일상이 모로코였기에,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한국은 너무나도 쾌적하고, 아름다웠다.
모로코를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막상 한국에 들어오니 조국의 편안함은 무시 못 한다.
이렇게나 아름답고 쾌적한 나라가 나의 나라라니.
우선 얼른 못 먹었던 것 가득 먹고, 내려가서 친구도 가족도 봐야겠다.
두 달 뒤면 나는, 다시 이 과정을 역재생할 테니 말이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왔다.
차창 밖 새로웠던 풍경이 익숙한 내 생활반경으로 바뀐다.
지도를 보지 않아도 다음에 내려야 할 차례.
정류장에 도착하고, 몇 분 뒤 보이는 익숙한 얼굴.
미리 내 집에 있던 언니가 나를 마중 나와주었다.
캐리어 3개와 백팩 하나를 나누어 들고
말과 입김을 동시에 내뱉으며, 집까지 도란도란 걸어간다.
뒤에서 보아도 딱 알 수 있다.
우리는 자매인 것을.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가니 꺼내진 메뉴 얘기.
“저녁 뭐 먹을래?”
“나 맛있는 거. 일단 돼지 먹고 싶어.”
“하하, 맞네 맞네.
그래! 집 가서 너 짐만 두고 바로 식당가로 가 보자.”
“너무 좋아!”
맙소사.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다 맛있는 것뿐.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가득한 이곳은.. 천국이 아닐까?
떠나기 전엔 당연했던 것들이,
잃고 돌아와 보니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안 되겠어.
오늘 우리의 저녁은, 곱도리탕에 소주다!
2025년, 1월.
귀국하자마자 한국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한동안은 한국의 편리함과
맛있는 음식들에 도파민이 솟구쳤다.
시차적응과의 씨름한 것도 빼놓을 수 없지.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얼추 적응되니,
곧바로 시작되는 일정들.
활동과 관련해서는 지난번과 같이
출국 전까지 스케줄에 맞추어
매주 현지어 수업과 교육들을 듣고,
보고서와 회의를 진행했다.
개인적으로는 치과 진료를 주에 2-3번을 다녔다.
동시에 서울의 오피스텔도 정리해야 했기에
은행을 집처럼 드나들었고,
출국 전까지 안의 가구들도 다 처분해야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휘몰아치며 지나갔다.
점점 떠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출국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캐리어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한 나.
생각보다 두 달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출국하기 전,
친구들과 가족들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내려가지 못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 아른거려 참 아쉬웠지만,
이 모든 준비가 다시 모로코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이니.
아이러니하게도 다 감수할 수 있었다.
같은 듯 많은 게 달라진 나의 두 번째 모로코.
어느덧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
딱 두 달 뒤, 2월 28일.
나는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같은 생활, 같은 나라.
그러나, ‘다른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
28년 간 불린 이름 대신, ‘다른 이름’으로 지내보는 삶.
이번 나의 도시는 붉은 벽돌 빛의 도시.
‘마라케시’.
그리고, 내게 새로운 정체성(이름)이 생겼다.
‘이슈라끄.’
모로칸인 나의 현지어 선생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나의 모로칸 이름이다.
나의 본명과도 연관 지어지어 주신 이름인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슈라끄(إشراق, Ichrak)”는 아랍어로 ‘햇살, 빛남, 환함’ 등을 의미하며,
이름으로는 ’ 밝게 빛나는 사람, 희망과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뉘앙스를 가진다고 한다.
뜻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이름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지.
좋아, 이번 모로코는 정말 내게 주어진 이름처럼 살아볼게.
이번 모로코는, 더욱더 스며들어 지내볼게.
이러한 다짐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내 자신이 기대가 됐다.
지난번과는 다른 에너지, 더 나은 모습의 나.
이 비행이 끝나고 다시 그들을 마주하면,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겠지.
“안녕, 반가워.
내 이름은 이슈라끄야. “
그렇게 빛이 되어,
또다시 모로코에서 살아간 4개월.
여정을 다 지나온 내게 누군가 물었다.
지난 모로코와 다시 떠나온 모로코가,
다른 점이 있었냐고.
이제는 모로코에 미련이 없어졌냐고.
음, 글쎄.
모로코에서만 나오는 고유한 내 정체성이 생겼다는 점.
현지어로 만든 이름을 정말 내 이름으로 가지고 살아보았다는 점,
적응을 넘어 현지인과 함께 삶에 스며들어 살았다는 점.
그리고 나는 모로코에서 더 살고 싶어 졌다는 것.
소중한 사람들, 소중한 기억들이 더욱 늘어나 버렸으니,
나는 또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한편으로 궁금해지기도 한다.
과연 내가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을까?
지난 모로코를 되돌아보면,
참 그들 앞에서 이름처럼 살아갔다.
‘이슈라끄’라는 이름의 뜻처럼 아주 밝게.
나와 인연을 만든 모로칸들은, 하나같이 내게 말했다.
“너는 너만의 에너지가 있어.
밝고 긍정적이라, 함께 있으면 참 기분이 좋아져.”라고.
내가 모로코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면,
“네가 모로코를 좋아하는 만큼, 모로코도 너를 좋아해!”라고.
나의 이름처럼,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나는 ‘빛’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프리카 모로코는 내게 ‘빛’이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어떻게 살아가면 될지 방향을 찾게 해 주었으니.
**
<여기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안녕하세요, 이 율 작가입니다.
저의 글을 어쩌다 스쳐보게 되셨든, 끝까지 읽어주셨든
제 첫 브런치 북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글을 쓰면서 하나하나 회상할 때마다,
깊게 이입이 되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했어요.
또, 부족한 제 글에 반응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마다
감사한 마음에 얼마나 벅찼는지 몰라요.
덕분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이것과 별개로 브런치에 제 글은 계속 발행할 예정입니다!
모로코와 관련해 추가 연재를 하게 된다면,
추석 전후로 다시 연재를 시작할 계획이에요!
지금까지 부족하고 서툰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다 덕분이에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나는, 빛이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