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수입차나 번듯한 대형 세단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한다. 서른 중반, 아이까지 있는 가장이라면 그에 걸맞은 '급'의 차를 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제 차 바꿀 때 되지 않았어?"라는 주변의 가벼운 참견은, 때로 내 경제적 능력을 시험하는 질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8년째 나의 '아반떼 AD' 핸들을 잡고 있다. 이 차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 그 이상이다. 내가 선택한 '자유의 크기'를 증명하는 가장 명확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파이어족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삶의 모든 비용을 '시간'으로 환산해 보는 것이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새 차를 할부로 구입한다는 것은, 앞으로 몇 년간 내 인생의 귀한 시간을 담보로 잡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번듯한 새 차가 주는 찰나의 하차감(下車感)과 5년 뒤 내가 얻게 될 1년의 자유 중 무엇이 더 값진가? 나에게 답은 명확했다.
나는 새 차를 사는 대신 그 돈을 미국 주식 시장으로 보냈다. 매월 빠져나갔을 할부금은 우량한 기업들의 주식수가 되어 내 계좌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반떼의 낡은 시트 위에 앉아 배당금 알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속도로 '시간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별하는 과정에 가깝다. 나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를 치장하는 대신, 아이와 함께할 미래의 오후를 사고 있다. 21개월 된 아들이 자라나 내 아반떼의 뒷좌석이 좁아질 때쯤, 나는 차를 바꾸는 대신 아들에게 "아빠는 이 낡은 차 덕분에 너와 평일 낮에 공원을 산책할 수 있게 됐단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구의 익숙한 골목길을 지나며 생각한다. 파이어는 결국 '덜어냄'의 미학이다.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야 비로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투자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다.
오늘도 나는 아반떼의 시동을 건다. 엔진 소리는 예전만 못할지 몰라도,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하다. 나는 지금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정성껏 매수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