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FIRE)을 꿈꾼다고 말하면, 대개 두 가지 반응이 돌아온다. 부러움 섞인 시선, 혹은 "평생 놀고만 싶으냐"는 은근한 비난이다. 사람들은 흔히 조기 은퇴를 '무책임한 도피'나 '해변에 누워 칵테일이나 마시는 나태한 삶'으로 치환하곤 한다. 하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내가 마주한 은퇴의 예행연습은 그 어떤 직장 생활보다 규칙적이고, 때로는 더 고통스러울 만큼 치열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노트북 앞에 앉아 디지털 영토를 일구는 시간만큼이나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정이 있다. 바로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거나 운동장 트랙을 달리는 시간이다.
처음 러닝을 시작했을 때, 대구의 뜨거운 한낮 공기를 가르며 숨을 몰아쉬던 순간을 기억한다. 1km도 채 달리지 못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때 깨달았다. 경제적 자유라는 거대한 목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체력적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자본 소득이 근로 소득을 추월하는 과정이 마라톤이라면, 그 과정을 견디게 하는 것은 결국 매일 아침 운동화 끈을 묶는 성실함이기 때문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마찬가지다. 근육을 키우는 과정은 파이어족이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처음엔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변화를 위해 매일 같은 무게를 견뎌야 하고, 근육이 찢어지는 통증(점진적 과부하)을 지나야 비로소 단단해진다. 내가 매일 땀 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이유는 단순히 몸을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갑자기 주어진 '무한한 자유'라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다.
준비되지 않은 자유는 독이다. 명확한 루틴과 자기 통제가 없는 은퇴는 사람을 무기력의 늪으로 빠뜨린다. 내가 꿈꾸는 파이어는 '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7시간 동안 내가 블로그를 쓰고, 주식을 공부하고, 몸을 단련하는 이유는 은퇴 후에도 이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자유를 얻었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도전들—더 깊이 있는 글쓰기,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탐구, 그리고 아빠로서 아이의 모든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 나는 지금 가장 역동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후 3시,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하며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땀에 젖은 얼굴은 직장에서 퇴근할 때의 초췌함과는 다르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고통이 주는 훈장이다. 파이어족은 멈추기 위해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더 가치 있는 곳으로, 더 멀리 달리기 위해 스스로의 궤도를 수정하는 사람이다.
나의 은퇴는 결코 정적인 쉼표가 아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문장을 써 내려가기 위한 느낌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