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오후 4시. 고요했던 집안에 다시 활기가 돌 시간이다. 어린이집문이 열리고 “아빠!” 하며 달려오는 21개월 아들을 품에 안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한다. 지금 내가 흘리는 땀과 고뇌가 5년 뒤 너와 나에게 어떤 풍경을 선물할지 말이다.
아직은 아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아이에게, 나는 가끔 미리 써둔 ‘은퇴 일정표’를 보여주곤 한다. 2031년, 네가 일곱 살이 되어 유치원 졸업을 앞둘 무렵, 아빠는 회사원이라는 외피를 완전히 벗어던질 계획이다.
그때가 되면 아빠는 너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 아니라, ‘네 곁에 온전히 존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파이어족이 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너에게 돈을 많이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대신 나는 너에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 아빠가 왜 낡은 아반떼를 고쳐 타며 미국 주식을 샀는지, 왜 모두가 잠든 새벽이나 네가 어린이집에 간 7시간 동안 치열하게 글을 썼는지, 그 이유를 네가 자랐을 때 꼭 들려주고 싶단다.
그건 단순히 가난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 영혼이 원하지 않는 일에 내 시간을 저당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침을 먹고, 네가 넘어졌을 때 언제든 달려가 무릎을 털어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 그것이 아빠가 생각하는 진짜 ‘부(富)’의 정의란다.
5년 뒤의 나에게도 미리 인사를 건네본다. 마흔을 앞둔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있겠지? 월급이라는 안전벨트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유영하는 법을 터득했을 거라 믿는다. 그동안 쌓아온 블로그의 기록들, 매일 아침 단련한 근육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지켜온 투자 원칙들이 너를 지켜주는 든든한 성벽이 되어 있을 거야.
파이어(FIRE)는 결코 화려한 탈출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숭고한 투쟁이다. 나는 오늘도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내일 아침 9시에 찾아올 그 ‘7시간의 기적’을 준비한다.
나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의 진짜 인생은 이제 막 서막을 올렸을 뿐이다. 아들아, 5년 뒤 네가 초등학교 책가방을 멜 때, 아빠는 정장 차림의 출근길 대신 너의 손을 잡고 학교 교문 앞까지 함께 걸어갈게. 그때 우리가 마주 볼 눈빛 속에 담길 건, ‘시간의 주인’이 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한 평온함일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