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98%인 남자와 살기

로봇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찌르면 피나요

by Meirees

MBTI, 혈액형, 별자리 이런 것들에 대해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재미로 알아보고 비슷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 또 공감하고 그것을 개기로 친해질 수 있으니까, MBTI가 유행했을 때부터 바로 검사를 해서 알아봤다. 물론 남편도 같이!


나는 ISFJ가 나왔고, 남편은 ISTJ다.

남편도 나도 결과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어서 "우와~ 하나 빼고 다 똑같다 좋다~"라고 심플하게만 생각했다. MBTI검사하면 아래 결과에 성향에 따라 몇 % 인지 자세하게 설명되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처음 검사를 했을 때 그걸 자세히 보진 않았다. 근데 어느 날 남편이랑 결과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우리 남편은 T가 98%가 나왔다는 것이다.


아니... 98%라는 숫자가 나오는 게 가능해?


검사 결과나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믿지 않는다라고 얘기했던 나에게도 98% T라는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공감능력이 아예 없는 것 아닌가?

근데 결론적으로 이 결과는 우리 남편에게 이로운 영향을 주었다. 남편이 작은 공감을 해줘도 내가 큰 감동을 받게 되었고, 남편이 공감하지 않고 나에게 상처되는 말을 가끔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에휴 T 98%가 뭘 알겠어..." 라며 그냥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있었던 일들 중, 쌍둥이 중 큰 아이가 집에서 뛰 놀다가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침대 프레임에 달려가다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고, 이마 한가운데가 움푹 패이는 상처가 났다.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올리는 표정을 할 때마다 움푹 파인 부분이 보였고,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상처가 차오르지 않고 그렇게 함몰된 채 성장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대성통곡하며 두 시간을 넘게 울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마 정 한가운데가 움푹 파인 것에 너무 속상하고 아이를 계속 주의 깊게 보지 않은 나 자신에 너무 속상해서 한참을 울었는데 그 한참 우는 동안 우리 남편은 와서 달래주지도 않고 아이들이랑 신나게 놀며, 내가 감정에 사무쳐 울도록 내비러뒀다. (와서 울지 말라고 한 마디 정도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다 울고 방에서 나왔을 때쯤... 쓱 옆으로 오더니.


"머리로 가려져"


한 마디 했다. 속상했겠다 많이 놀랐지? 애도 많이 아팠는지 한참 울었는데 같이 놀다 다쳤으니 당신이 얼마나 속상하고 놀랬을까 이런 뭔가 감정을 터치하는 위로나 그런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 목욕시키고 저녁을 한참 만들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왜 이렇게 집이 지저분하냐고 한 마디 하더니, 저녁을 만들어서 식탁에 놓자 차린게 이게 다냐고 묻는다. (아이들에게 단백질을 많이 먹여야 건강하게 잘 크는데 고기류 혹은 두부 이런 반찬이 많이 없으면 꼭 뭐라 하는 편이다) 그날따라 애들이 반찬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바닥에 밥이랑 반찬을 던지고 뱉고 제대로 몇 숟갈 먹지도 않자 남편이 애들이 이렇게 밥 갖고 장난치는 거 보기 힘들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퇴근하고 집에 온 지 세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애들을 씻기고 저녁을 만들고 그리고 바닥으로 내팽개쳐진 반찬과 밥을 치우고 식탁을 치우는데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 해서 남편에게 애들 있을 때 화를 낼 수 없으니 카톡으로 "그냥 다른 얘기 하지 말고, 아 당신 진짜 너무 스트레스받고 힘들겠다, 퇴근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애들 다 씻기고 저녁 만들고 한 건데 그 저녁을 먹지도 않고 바닥에 던지고 뱉고 장난쳤으니 나도 보는데 스트레스받고 화나는데 당신은 오죽할까 너무 속상하겠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라고 해주면 안 돼?"

라고 했더니 답이 없다.


그러더니 애들을 다 재우고 나와서 한다는 얘기가 "나는 몰랐지 네가 앉지도 못하고 계속 고생하면서 애들 챙긴 줄... 집에 오니 네가 저녁 이미 하고 있고 내가 본 건 그 후의 일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말한다.


"네가 안 했음 누가 해 내가 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안 간다는 게 말이 돼?"

라며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제야 미안한지 꼭 안으며 미안하다고 바로바로 그런 거 인지 못하고 표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정말 감정선 하나하나 꼬집어서 설명해 주거나 힘든 일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표현해야 인지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사랑하긴 하나? 이런 느낌이 드는 이벤트들이 종종 있지만 이 또한 그가 공감능력이 너무너무 떨어지고... 타인의 감정에 대한 해석이 매우 떨어지고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로봇 같기 때문이라며 오늘도 내 마음을 스스로 토닥이며 위로해 본다.


그래도 본인 객관화 우리에 대한 객관화가 너무 잘 되어 있는 사람이며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위험한 순간에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에 이 또한 그의 장점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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