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드레밥

곤드레나물로 밥을 해서 팔았더니

by 춤추는 소나무

2013년 12월에 시작했으니, 제조업 경력이 올해로 12년째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백 년 기업이니 장인이니 하는 사람들의 시간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만한 시간이니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시골집 주변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감나무들이 많았습니다. 그 감나무에 달린 감들이 일손이 모자라, 매년 그냥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감들을 수확해 곶감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조업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지를.

12년 동안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주요한 제품만 나열해도, 곶감, 과일 발효액(감, 사과, 자두, 살구, 탱자 등), 곡물 효소, 산삼배양근 효소, 밥 짓기용 나물 5종(곤드레, 취나물, 무청시래기 등), 잡채 키트, 뿌청(뿌려먹는 청양고추), 아이스 군고구마, 야채 바통(디저트 빵) 등. 쭉 늘어놓으니, 가짓수가 많네요. 이렇다 할 히트 상품 없이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는 것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동안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마냥 쏟아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빛이 들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아직도 터널 안에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다만 지금은 저 멀리 조그만 빛이 보이는 것 같기는 합니다.


요즘은 곤드레밥과 오곡찰밥을 만들어 일회용 용기에 담아 팔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도움으로 과천 경마장, 서초구청, 뚝섬한강공원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는 직거래장터에 나가서 파는데 제법 잘 팔립니다. 매번 지리산과 서울을 오가는 것이 번거로워 얼마 전에는 서울에 작업장도 마련했습니다. 15년 전 지리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거주했던 성북구 돈암동의 한신아파트 단지 내 상가 일부를 빌려서 작업장으로 꾸몄습니다.

장터가 열리는 날은 새벽 4시쯤 작업장에 나가 일을 시작합니다. 아내와 함께 3시간 정도 작업을 하면 하루 팔 수 있는 물량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차에 싣고 장터로 나갑니다. 요즘은 물량이 딸려 아침에 아내를 장터에 내려주고 나는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와 추가로 물건을 만들어 가지고 갑니다. 다시 장터에 도착하면 대략 오후 1시 전후가 되는데, 장이 파하는 5시경까지 장사를 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것도, 다 때가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곤드레나물을 취급한 지가 8년이 넘었는데, 그것으로 밥을 해서 팔 생각은 최근에야 하게 되었으니까요. 시장 사람들이 곤드레밥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좋다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만들어 오던 나물로 밥을 해서 팔 뿐인데, 나물로 팔 때와 밥을 해서 팔 때가 전혀 다릅니다. 밥을 팔기 전까지는 매대에 나물을 올려놓아도 잘 안 팔렸는데, 밥 옆에 놓으니, 밥뿐만 아니라 나물도 덩달아 잘 팔립니다.

물건이 팔려나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소위 ‘혁신’이라는 것이 뭐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물로 팔던 것을 그 나물로 밥을 해서 파는 것, 큰 변화가 아닌 것 같은데도 효과에 있어서는 차이가 큰 것, 바로 그런 것이 혁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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