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왜 이 세상이 흉악한 곳이라고 계속 말하는 걸까
오늘 아침에는 4시 반쯤 일어났습니다. 아내가 일찍 일어나 오늘 백화점에서 팔 나물을 볶아야 한다면서 부스럭거리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일찍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난 셈입니다.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간 아내와 어머니가 조용히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험’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을 보니 최근에 내가 해약한 보험 얘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에 돈이 궁해 20여 년간 넣던 보험을 해약했습니다. 내가 낸 보험료의 65% 정도밖에 주지 않더군요. 앞으로 5개월만 더 넣으면 평생 보장이 된다는 보험이었는데 아깝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달리 돈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서 미련 없이 해약했습니다.
서재로 가기 위해 부엌을 지나다 어머니와 마주쳤습니다. 어머니는 겸연쩍은 얼굴로 나에게 새로 보험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말을 길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은 보험을 다시 들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20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생각이 납니다. TV를 틀기만 하면 경찰이 흑인들을 체포하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언론은 사람들에게 ‘공포’와 ‘편견’을 조장하는 일만 보도할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도 많을 텐데 왜 그런 것들은 보도하지 않고, 저렇게 어두운 면만 애써 들춰서 보도할까. 혹시 사람들에게 세상을 이렇게 흉악한 곳이라고 주장할 이유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교회’와 ‘보험회사’였습니다. 만약 이 세상이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곳이 바로 그 두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혹시 언론, 경찰, 교회 혹은 보험회사의 우두머리들이 주기적으로 만나 협의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마 언론이나 교회는 게거품을 물고 나를 음모론자로 몰아세울 것입니다. 보험회사는 복잡한 수치를 들이대며 보험의 합리성을 설명하려 들지 모르겠네요. 마치 사이비 정치학자가 미국은 핵을 가져도 되고 북한은 핵을 가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죠.
보험에 해당하는 적금을 하나 들어야겠습니다. 괜히 보험회사가 나를 보호해 주리라는 ‘착각’을 하지 않고, 적금에 쌓이는 금액만큼만 보장받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