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감별법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통역은 음지에서 일하는 서비스 직종이다. 그래서 “통역은 지폐처럼 가짜일 때만 세상에 알려진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40년 전문통역 역사상 통역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된 것은 오역이 있었을 경우에 한정되었다. 그러다가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싸고 미북 정상회담이 벌어지자 트럼프의 통역을 맡은 한국계 여성이 집중 보도되었고, 북한의 여성 통역사가 오역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는 소문도 났다.
최근 특히 유튜브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통역사는 영화 기생충 감독 봉준호의 여성 통역사다. 그의 통역을 분석하는 꼭지가 하루에도 몇 개씩 새로 업로드되고 있다. 정식 통역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그의 통역은 거의 완벽하다는 것이 중론이 되었다. 영화를 공부한 후 봉 감독의 통역을 하다 보니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고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어떤 사람이 좋은 통역사인지 구별하는 방법이 있을까?
통역이라는 키워드로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보면 ‘관종’ 밀레니얼 세대의 자기 선전이 너무 지나쳐 한숨이 나온다. 자신이 통역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놓고 자랑하면서 “오늘도 완벽한 통역을 한” 것처럼 떠벌린다. 도대체 통역을 하려 갔는지 선전용 사진을 찍으러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제 40년 통역 실무를 떠난 필자가 보기에는 사진찍기에 급급하며 한 통역의 품질이 높았을 수가 없다. 영화 ‘옥자’를 보면 통역을 소홀히 한 출연자가 반성의 표시로 팔뚝에 “통역은 신성하다 (Translation is sacred)”는 문신을 하고 나타난다. 그렇다. 남의 말을 내말처럼 충실히 옮겨야 하는 통역은 도중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여유가 있을 만큼 쉽고 한가한 작업이 아니다.
필자의 기억으로 제자이지만 실무통역을 해본 적이 없는 통역학원의 강사 제자가 자기소개에 “한국최고의 통역사”라고 허풍을 떤다. 반반한 외모의 자칭 통역사가 통역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그렇게 힘든 통역이었는데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는 식으로 미주알고주알 엮어 얘기한다. 가짜 뉴스와 다를 바 없는데 검증할 길이 없고 대부분 네티즌들은 속아넘어갈 것이다. 심지어 연예인의 배우자라는 자칭 ‘동시통역사’는 누가 들어도 엉터리인 영어를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망신을 당하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밀레니얼 세대에 ‘관종’이 많고, 재미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랑하기를 즐기고, 또래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나누기를 원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음지에서 신성하고 어려운 통역을 묵묵히 수행하는 진짜 통역사들의 일을 엉터리 홍보로 뺏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되고 신성한 통역을 희화화해 순진한 어린 통역지망생들을 오도해서도 안된다. 통역사를 믿고 훌륭한 통역을 기대하는 고객들을 기만해서도 안된다.
결론적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자가 홍보를 하는 통역사는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상책이다. 선전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통역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음지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통역사가 훨씬 많으니 그런 사람들을 찾거나 소개받아 통역을 시켜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