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아닌 '전략'을 물을 때
최근 발표된 국가 주도 초거대 AI 프로젝트의 사업자 선정 결과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AI 기술을 대표한다고 여겨졌던 네이버와 NC소프트가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죠. 누구나 예상했던 '골리앗'이 탈락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모델을 제시한 KT, SKT, 업스테이지 등이 포함된 컨소시엄이 선정되는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결과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선정 결과는 단순히 한 프로젝트의 사업자 선정을 넘어, 국내 AI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합니다.
'크기 경쟁'의 종말과 '실용주의'의 부상
국내 대기업과 AI 기업 재직 시절에 '규모'가 곧 '가치'로 직결되지 않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이번 결과는 바로 이런 현상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AI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최근 정부 주도 과업들을 분석해 보면 정부의 평가 기준이 분석 파라미터 수와 같은 단순 '덩치' 경쟁에서 벗어나, 특정 과업 목적에 얼마나 효율적이고 빠르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실용성'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학위 과정에서나 삼성전자 BigData센터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있으면서 배운 점은, 가장 정교한 모델이 항상 최고의 예측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특정 문제에 최적화된 간결한 모델이 더 나은 성과를 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번 AI 프로젝트는 범용성을 앞세운 거대 모델(LLM)보다, 특정 산업 분야(법률, 의료, 금융 등)에 특화된 소형 모델(SLM, Small Language Model)의 가능성을 국가가 인정한 첫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GPT 최신 모델 따라 하기'에 매몰되기보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더 유효하다는 시그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AI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제는 단일 거대 모델에 모든 것을 거는 전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부는 단순히 최종 승자를 뽑는 경연 대회를 열기보다는, 다양한 AI 모델들이 마음껏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특히, 양질의 공공 데이터 개방, 중소기업도 활용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 지원, 그리고 공정한 성능 평가(벤치마크) 기준 마련이 시급합니다. AI 전문가들이 마음껏 뛰고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선수들의 실력이 향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이버와 같은 기업들은 이번 결과를 뼈아프게 받아들이되, 전략을 수정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핵심 원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은 지속하되,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에 특화된 경량화 모델들을 빠르게 출시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의 강력한 엔진을 만들어 세단, SUV, 스포츠카 등 다양한 차종에 맞게 튜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번 결과 발표는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하기보다는 하나의 기회로 평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할 부분은 이제는 규모의 경쟁이 아닌, 전략의 경쟁에서 우리의 강점을 바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