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거점 국립대'와 '열린대학'

by Argos ryu

교육은 무상이 아니다. 의무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보육’은 틀린 말이다. ‘무상’은 시혜의 언어다. 교육은 시혜가 아니다.

교육은 헌법이 정한 국가의 책무이자 국민의 권리다. 이 권리를 ‘무상’으로 포장하는 순간, 권리는 혜택으로 둔갑한다. 용어 정의를 새롭게 하자.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 무상교육이 아니라 의무교육이다.

의무에는 책임과 지속, 구조적 지원이 따른다. 국가는 의무교육에 있어 학비만이 아니라 교재비·학용품·식비E등 학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학업 생활 기반 전반을 보장해야 한다. 교육은 ‘지원’이 아니라 기반이다.

이 인식이 바로 서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어떤 균형도, 어떤 전략도 흔들린다.


대학은 넘치고, 학생은 줄고 있다.


학령인구가 급락하고 있다. 2023년 출생아 수는 20만 명대, 2000년대 초반의 절반 이하다. 대학에 갈

인구가 사라지고 있다. 이 추세는 되돌리기 어렵다. 정부·교육부·대학은 알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교육당국의 무능, 정치권의 기회주의, 사학의 이기심이 만든 결과다. 결론은 분명하다. 학생은 줄고, 대학은 남는다. 수많은 사립대가 충원에 실패하고 있고, 지방 국립대도 존립을 걱정하고 있다. 이것은 대학의 위기가 아니라 국가 기획 실패다. 해법은 숫자 조정이 아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를 재정의하고, 기능을 분화하며,

책임을 재배치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능 전환이다.


고등교육 3분지계


한국의 고등교육 체계는 이제 기능 중심, 책무 중심, 수요 중심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더 이상 ‘모든

대학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학생 수도 줄고, 자원도 한정돼 있고, 키워야 할

전략 분야와 인재군도 다르다. 고등교육은 다음 세 가지로 분화시켜야 한다.


첫 번째는 엘리트 교육이다. 담당 교육기관은 서울대, 10개 지방거점 국립대, 4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다. 국가전략 분야(기초학문·과학기술·인문학)는 국가가 직접 학생들을 선발하고 교육을 책임지며 집중투자 한다. 과기특성화를 제외한 국립대 11곳은 지역 우선 선발이 원칙이다. 주민등록 기준 해당 지역 3년 이상 거주자를 우선 선발하고, 미충원 시에만 타 지역 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서울대 역시 동일 기준을 적용한다.

서울대는 서울 시민의 국립대여야 하고, 경북대는 경북 지역 학생의 국립대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입학

정책이 아니다. 서울대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국가적 메시지이자, 지방 정체성을 복원하는 철학적 조치다.

학부생들에겐 등록금·교재·학용품이 의무 제공되며 모든 학부생은 타 지역 국립대 최소 1학기 의무 이수를

원칙으로 한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회 전반의 정서적 분절, 인식의 벽, 지역 간 대립을 교육을 통해 허물고자 한다. 국립대 신입생 1학년은 전원 기숙사 거주가 의무이며 타 지역에서 전입 온 학생에 대한 기숙사 제공

역시 의무이다. 기숙사 의무 거주자를 대상으로 기숙사 소요량을 산출하고 부족분은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위해 대학 주변의 사설 거주시설을 ‘대학 협약 시설’로 지정해 운영토록 한다. 국립대 재학생에게는 1일 3식을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식자재 조달은 지역 농가·급식업체 연계를 원칙으로 한다.

국립대의 입학 문호는 열지만, 학위는 절대 가볍게 주지 않는다. 절대평가와 졸업 논문, 전공 시험 등을 통해 입학보다 더 무거운 졸업 장벽을 둔다. 실력 없는 자는 통과하지 못한다. 엘리트 교육 트랙을 거친 학사학위 그 자체가 능력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책임지고 국가의 동량이 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열린 교육이다. 기존 국립·공립·시립대학 인프라를 재조정해 사회 재교육 중심 대학으로 전환시킨다. 입학 경로는 다양하다. 수능, 경력, 포트폴리오, 자격시험 등 입학 문을 넓게 열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학업의 때를 놓친 자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입학경로는 다르지만, 교육의 품질은 같다.

이 트랙의 핵심은 시민 누구나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무분별한 학위남발로 인해

그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열린 교육 트랙을 거친 학사학위라 하더라도 그 귄위는 유지될 수

있게 교육과 학위의 질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공교육 학사학위는 경력 장식이 아니라 실력에 대한 공증이다.


마지막은 사립대학에 대한 것으로, 사학은 공공 고등교육 체계에서 완전히 분리시킨다. 사립대는 이제 정원, 입시, 교육과정, 졸업 요건 모두 시장 자율에 따라 운영된다. 국가는 더 이상 사립대에 무조건적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며, 국고 지원은 사학의 지속가능성 평가에 연동해 엄격한 기준 하에 허용한다. 도태될 사학은 도태된다. 과거 공교육 부담을 분담했던 사립대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생존은 시장과 학생의 선택에 맡긴다.

이제 사립대는 스스로 살아남든지, 시장에서 퇴출되든지, 자유롭게 경쟁하게 한다.


국가 예산은 제한적이다. 비용대비 최대 효과를 거두기 위해 효율적 예산운영은 필수적이다. 예산 효율

극대화는 고등교육 삼분지계계의 뼈대다. 공교육이 국가의 엘리트군 육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등

교육에 개입해야만 한다.


지방거점 국립대, 지방경제 회복의 씨앗


대한민국의 지방은 지금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사라지고 있다. 출생은 줄고, 청년은 떠나고, 남는 것은 텅 빈 거리와 고령 인구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소멸의 시작은 거점 대학의 기능 상실에서 비롯된다. 지역 거점

대학이 붕괴되면 학생이 사라지고 지역 공동체가 해체된다. 지방 경제의 부활은 더 이상 제조업이나 공장을

얼마나 많이 유치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구조'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교육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그 지역에 사람을 ‘머물게’ 하고, ‘오게’ 만들고, ‘살게’ 만든다. 지방거점

국립대를 엘리트 교육 중심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단지 좋은 인재를 지방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인재가 그 지역에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의미다. 지방거점 국립대는 지역의 기본 인프라로 재설계

해야 한다. 안정적 재정 자립기반을 만들기 위해 지역민과 동문들, 지자체와 지역 기업을 적극적으로 끌어

들여 후원을 유도하고 대학은 그 에너지로 지역 인재를 직접 키우는 구조를 만든다. 국립대가 지역의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다른 지역을 경험하고 돌아와 지역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구조. 그 과정에

지역민, 졸업생, 향토기업, 지자체가 모두 참여하는 되는 구조.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교육정책이 아니라

지방 자치 생태계 복원 정책이다. 중앙이 뿌려준 돈으로 유지되는 지방이 아니라, 지역 대학이 만든

인재가 그 지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구조이다. 씨를 뿌려야 열매를 얻는다. 그 씨는 교육이고, 그 밭은

지역이다. 지방거점 국립대는 단순한 교육기관으로만 머물면 안된다. 그것은 지방 경제의 핵심 플랫폼이

되어야 하고 지방 자치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해제되어야 할 것은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 특별주의’다


서울대는 현재 한국 교육의 정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점’이 실질적 기준이 아니라 상징으로 기능

한다는 데 있다. 수험생들은 서울대를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곳에 갔다는 사회적 신분표’를 얻는 것으로도 인식한다. 서울대는 단지 하나의 국립대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체 교육 질서를 지배하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군림해왔다. 그리고 이 서열은 서울 쏠림, 지방 소외, 사교육과열, 정서적 불평등,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왔다. 해체되어야 할 것은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이 특별하다는 인식이다. 서울대는 그저 서울 시민이 다니는 국립대여야 한다. 경북대는 경북 아이들이, 전남대는 전남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국립대는 그 지역의 공공 인프라다. 서울대가 전국 학생을 쓸어가는 구조는 지방의 존엄을 해체하고, 교육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국가의 토대를 갉아먹는다. 일본을 보자. 일본이 지역 거점대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도쿄대가 아니라 홋카이도대·도호쿠대·규슈대가 지역 지식

체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진짜 엘리트 교육은 ‘장소’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 엘리트 교육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서울에 있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엘리트 교육은 정확한 선발 기준, 강도 높은 학사관리, 특화된

연구 분야, 유연한 교류, 교육 인프라의 연결, 이 모든 것을 시스템으로 구축할 때 가능해진다. 우리는 새로운 고등교육 질서의 축을 세워야만 한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면 취업이 잘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유효하지 않은 허상이다. 기업은 ‘서울 출신’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그 ‘잘하는 사람’은 대학이 어떻게 키웠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단순히 졸업장을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공증하는 것이다. 즉, 철저한 학사관리.

실력 없는 자는 통과시키지 않고, 전공 역량 없는 자는 학위를 줄 수 없는 무거운 졸업 시스템. 바로

그것이 지방 거점 국립대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지방에 있어도,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

누구나 탐을 내는 인재로 키워낼 수만 있다면 기업은 그 대학 출신을 믿고 뽑는다. 공교육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공정하게 선발하고, 공들여 가르치고, 사회에 내보낼 때는 그 실력을 책임 있게 공증하는 것. 그게 바로 진짜 대학이고, 그게 바로 지방 거점 국립대가 살아남는 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위는 너무 많고, 그 가치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대학은 정원을 채우기 위해,

학생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사회는 경력을 인증받기 위해 서로 합의된 듯 형식적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그 결과, ‘학사 학위’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실력을 양성하지 않아도 학위를

받는 구조가 만연해 있다. 학위가 많다고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학위가 아무 의미도 없을 때, 그 학위를

발급한 공교육은 시스템 전체가 무너진다. 이제는 입학보다 졸업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학위는 자격증이 아니라 국가가 공증한 실력 증명서여야 한다. 그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어떤 고등교육

개혁도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예산은 무한하지 않다


선택과 집중만이 길이다. 한국은 산유국이 아니고, 어딘가에 쌓아둔 식민지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북한과 대치하는 안보국가이며, 동북아 패권경쟁 한가운데에 있다. 국방비는 줄일 수 없고,

복지 확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조건하에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은 우리나라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예산의 비효율로 흘러가고 있다면, 그건 국가의 자살 행위다. 우리는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사람이라는 자원을 가장 정확하게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대와 서울의 신화가 무너져야 지방 국립대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한국은

엘리트 교육을 ‘장소’가 아닌 ‘시스템’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서울에서만 인재가 자라는 것이 아닌

전국 어디에서나 실력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게 진짜 국가고, 진짜 공정이고,

진짜 교육이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어떻게 존속하는가? 그 해답은 명확하다. 공교육 회복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고 존속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학령인구 붕괴,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 사교육 중독이라는 네 가지 교육 재앙 속에 서 있다. 교육은 특정인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 아니다. 교육은 헌법에 명시된 국가의 책임이며,

국민이 당당히 요구해야 할 공적 권리이다.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국가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교육 없이는 국가도 없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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