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희망한다.
깔끔한 과업지시서와 잘 빠진 산출내역서, 입찰을 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 그리고 성격 좋은 사업담당자. 문제없이 과업이 종료되는 아름다운 상황은, 계약담당자들을 더욱 완만한 직장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사업담당자와 든든한 동반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가겠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직장에서의 모든 날들이 이렇게 아름답지만은 못하다는 점에서 오늘의 글이 시작될 것 같다.
우리는 절망한다.
계약하기도 전에 진행되어버린 과업, 검토할 시간 없이 응급으로 들어가야 하는 계약, 산출 단가는 안 맞고, 사고 친 후 사색이 되어 “어떡하죠?”물어오는 사업담당자. 이러한 상황은, 계약담당자를 강철 멘탈의 K-직장인으로 거듭나게 한다.
모든 사업담당자와 계약담당자가 건강한 협력관계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촉박하게 일이 진행되거나, 다소 더디다고 느껴져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어도 라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면 사업담당자는 “아 급해죽겠는데 왜 이렇게 업무 협조를 안해?”라고 생각하고, 계약담당자는 “자기들만 바쁜가? 나 엿 먹이나?”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동반자는커녕 견원지간이 된 사례가 수두룩하다.
문화재단에서 일을 하다 보면 비상상황이 반드시 한 번은 찾아온다. 개인의 능력이 부족한 탓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축제, 행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예측 불가한 사고들이 잇달아 터졌으니 더했다. 물론 도의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일들은 모두 수습이 된다. 조금씩 더 바빠진 서로를 격려하며 방향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만 짚어내고 이후부터 주의를 요하면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러게 왜 그렇게 진행했어?”라며 짜증을 섞고 “왜 빨리 계약 안했어?”라고 책임을 전가하니 좁쌀만 한 라포쯤이야 산산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다. 문화재단은 타지 발령도 없으니 누군가 한 명이 제발 퇴사하길 기도하며 정년을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경험담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사람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사회심리학에서는 ‘호의의 반보성’이라고 한다. 친절과 다정도 결국은 기브 앤 테이크인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뒤집어 ‘악의의 반보성’ ‘적의의 반보성’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본다. 내가 선배라서, 나는 손해 볼 게 없을 것 같아서 등의 사고로 누군가에게 적의를 내보이면 그 적의도 돌아오기 마련이다. 짜증이 치솟는다면 심호흡을 해보자. 그리고 정년까지 남은 시간을 세어보며 진정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