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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의 피아노가 빚은 전율의 순간

손민수 임윤찬 듀오 피아노 리사이틀

by 염동교

일년에 서너번 클래시컬 뮤직 콘서트를 관람하지만 아마 듀오 피아노 리사이틀은 처음이지 않았을까? 롯데콘서트홀의 웅장한 내부에 놓인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부터 포스가 남달랐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0의 기획으로 요즘 조성진과 더불어 가장 핫한 임윤찬과 그의 스승이자 베테랑 피아니스트 손민수의 합동 공연이 2025년 7월 14일 롯데콘서트홀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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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만에 전율을 느꼈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작곡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단조, Op. 34b”은 역동성과 부드러움을 두루 갖춘 작품이었다. 뜬금없이 교향악단을 보러 종종 예술의전당에 간다던 옛 데이트 상대가 떠올라 마음이 서글퍼졌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부터 두 대의 피아노가 쏟아내는 무수한 음표와 음률을 계산했을 브람스의 천재성 등 잡다한 생각이 피어났다.


초반부 부드러웠던 분위기가 3악장 “Scherzo: Allegro”에서 확 전환되었다. 승전고를 울리는 역동적이고 힘찬 전개에 잠시 빠져들었던 감상에서 깨어났다. 임윤찬은 피아노 로커처럼 거칠게 리듬을 탄 반면 스승 손민수는 비교적 움직임이 간소했다. 두 사람이 더불어 혹은 교차로 머리를 내젖힐 때 느끼는 희열감과 서로를 응시할 때 주는 울림이 대단했다. 확실히 호흡이 잘 맞는 느낌이었다.


인터미션 이후 다룬 작품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양단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였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무곡, Op. 45”는 역시나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최상단에 있던 작가답게 피아노의 무한 매력을 들려줬다. 물론 라흐마니노프 원본의 해석은 손민수와 임윤찬의 몫. 비교적 차분했던 1악장 “Non allegro”를 지나 2악장 “Andante con moto (Tempo di valse)”에선 이국적 리듬과 향취가 도드라졌다. 스페인 혹은 남미 원주민들이 춤을 추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신묘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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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장미의 기사 모음곡”. 기존 곡을 두 대를 위한 피아노 구성으로 편곡한 이는 2006년생 젊은 음악가 이하느리로 임윤찬과 함께 수학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로맨틱하고 나긋한 곡조였고 비장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익숙한 나로선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특히 높은음을 반복해서 가녀리고 세밀하게 연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맑은 종소리처럼 찰랑댔다. “장미의 기사”라니 참 로맨틱한 제목 아닌가? 산 넘고 바다 건너 공주를 구출하러 가는 로맨틱 기사를 상상해 봤다. 가사가 없이 제멋대로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점도 고전음악의 장점이다.


수차례 커튼콜에 이어 2~3분여의 짧은 앵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분여 연주하다 잠시 멈출 때 관객들의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이컨택을 한 손-임 듀오는 이내 폭발적인 듀오 플레이를 이어갔고 머리를 함께 뒤로 내 젖히는 극적인 마무리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스물여덟 해 터울의 스승과 제자임에도 두 예술가에게선 서로에 대한 크나큰 존중이 느껴졌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두 연주자가 빚는 무수한 경우의 수의 피아노 음악은 라이브의 현장감과 만나 전율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원작자와 실연자를 향한 경외감과 더불어 피아노의 악기성을 듬뿍 체감한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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