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드 역사학과 교수 3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선언했다.
“하바드에는 외교정책(Harvard has no foreign policy)이 없습니다.”
국제정치학을 강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중국 역사를 강의하기에 앞서 冒頭 형식으로 강좌에 참여한 3사람의 교수의 좌담 자리였다.
이어 이들은 “우리는 의견 일치를 하지 않습니다(We don’t agree on one).”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덧붙여 “이 강좌는 미국에서 중국을 알기위해 배우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 사람도 들을 수 있습니다. 다른 거울을 통해 보게 될 것입니다.”
이 강좌 이름은 ‘ChinaX’로 중국 역사와 문명에 대한 한 학기 오픈 강좌이다. 그들의 아주 자신 만만하고 당당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이들 교수의 스스로의 소개를 보니 그 중 한 명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하바드대학의 페어뱅크 교수에게 지도를 받은 그 문하생이었다고 말했다. 페어뱅크는 내가 1971년도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동양사학과 교수가 소개한 일종의 기본 텍스트 저자였다. (사실 기본 텍스트는 없었다. 수 많은 참고 문헌 중 하나이었을 뿐이었다).
당시엔 중국사에 대한 한국내 연구가 미흡하여 마땅한 기본서가 없었다. 교수는 그 책을 소개한 이유로 “국내 학자에 의해 쓰여진 마땅한 책이 없는데, 미국에서 쓰여진 이책이 비교적 객관적이어서 이것을 소개한다” 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가 실패한 것은 너무 통일(unity)에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그 ‘통일’,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그 ‘일치된 의견’ 때문에 수천명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로베스피엘도 그렇게 갔다. 가난한 자를 위해 싸우고 민주주의를 그렇게도 갈망했던 그가… 그는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역사에 자리매김되고 있을 뿐이다.
혁명이라고 미화된 광풍에 근대 화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라부아제도 단두대에 목이 베었다. 단지 척결되어야할 기득권층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그 시대에는 일치된 민중의 모습이었다. 룻소가 말한 일반의지 정도로 이론화 될 수 있는 풍경이었다.
후에 해석역학의 대가였던 라그량쥬는 탄식했다. "그의 목을 자르는 데에는 순간이면 족했지만, 이와 같은 과학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몇백년이 필요할 것이다."
역사에서는 흔히 큰 그림을 놓치는 장면이 많다.
1930년대 승승장구하면서 히틀러는 “우리에겐 과학은 필요없다”고 수많은 독일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외쳤다. 수많은 탁월한 유태인 과학자보다 아리안족의 우월적 지위에 바탕한 사회가 더 중요했다. 결과는 그들이 쫓아낸 과학자의 힘에 의한 독일의 패배였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수 많은 유태인 과학자들이 독일을 탈출했다. 독일 국민의 일치된 단결에 광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한국은 너무 전체주의적 비슷한 의견 일치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헌법재판소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전원 일치 판결을 내렸다. 재야 법조계의 원로나 원로 지식인들의 전문적 지식은 무시되었다. 법적, 정치적 논점으로 보면 다양한 목소리가 있을 법직도 한데도... 한 둘은 소수 의견을 내었을 법도 한데.
헌법재판소는 법익을 판단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지켜야할 헌법수호의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비교 형량 방법이다. 일리도 있다. 우리가 옛날 학창시절엔 벤담의 공리주의가 지고의 진리이자 선인 줄 알고 배웠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몇 년 전 한국에서도 큰 인기와 선풍을 일으킨 하바드 대학 정치철학 전공 교수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 그 헛점을 치밀하게 지적하고 있다.
저 유명한 망망대해에서 한 조각의 일엽편주에 의지한 채 헤매는 4명의 인간들. 결국 1명을 살해하여 3명이 그 인육을 먹고 버틴 끝에 구조되었다. 이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그 1 명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나머지 3명을 포함해서 모두 굶어 죽었을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한 명을 희생하여 세 명을 살렸는데 왜 죄가 되느냐고 따졌다 (더들리 스티븐스 케이스; The Queen v. Dudley and Stephens).
만일 법관이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는 논리를 적용했더라면 이들은 무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 모두에 유죄를 선고했다. 샌델 교수도 이 예를 들면서 벤담의 공리주의의 헛점을 파헤쳤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후에 전체주의 국가 원리에 악용되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1948년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라는 서두로 저 유명하고 인상깊은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다른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또는 깔아 뭉게는 이상한 사회 분위기가 유령처럼 떠 돌고 있다. 좀 불만이다.
한국의 현 집단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나 있을지 모르겠다.
알고도 잊어버려 다양한 사회의 가치를 적용을 하지 않았으면 교활한 것이고, 모르고 몰랐으면 바보 천치같은 사람들에게 세상사를 맡긴 꼴이나 다름없다.
(2017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