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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성 Jul 19. 2022

실크로드 기행을 시작하며

중국 우한 - 카자흐스탄 알마티

 '실크로드'

 맥주 한 캔으로는 하루치 노동의 고됨과 한여름의 더위가 쉬이 잦아들지 않는 밤. 이 계절의 공기는 문득문득 나를 그때의 실크로드로 데려다 놓는다.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건만, 마치 내 일부를 그때 그곳에 두고 온 듯, 이 계절의 나는 으레 그때의 실크로드를 그리워한다.

시안

 돌이켜보면 8,000km의 여정은 역정(逆程)의 역정(歷程)이었다. 어릴 적 실크로드를 그리며 막연히 떠올렸던 것들, 이를테면 끝없이 펼쳐진 사막, 그 사막을 묵묵히 기어가는 낙타의 무리, 밤이 되면  위로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 같은 것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나는 여정의 대부분을 지독한 설사에 시달려야 했으며, 무더위와 끝없이 이어지는 이동에 지칠 대로 지쳐 끝나버린 여정이었다.

란저우
장예

 여정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남쪽 작은 마을 '카지쎄이'에서는 설사병이 너무 심해 이틀 연속 숙소에 누워만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멋진 산의 나라에서, 산 좋아하는 내가 트레킹을 가지 않고 호숫가로 기어들어온 것부터가 벌써 반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가져간 지사제가 다 떨어져 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후회라는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자위관
둔황
투르판

 여행을 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겠지만, 난 무척 단순하다. 보고 싶어서. 거기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기 때문에 난 길을 나선다. 전날 마신 술의 숙취가 길어진 만큼 난 나이를 먹은 것이었고, 딱 그만큼 떨어진 체력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는 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못내 불안했었다. 그렇기에 가다가 몸과 마음이 지쳐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으면 이만 여행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엉망이 된 몸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여정은 예정대로 이어졌다.

카슈가르
이르케슈탐
오시

 키르기스스탄 오시. 내 실크로드 여정은 엄밀히 말하면 그곳에서 마무리되었다. 미완의 실크로드 여정은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서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그리고 유럽으로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이제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미완의 여정은 언제가 되었든 다시 이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언젠가 바로 그곳 오시에서 길을 이어가야만 할 것이다.

카라콜
카라콜
알마티

 내 미완의 실크로드 여정은, 아마 내가 지금껏 지나왔던 도시 중 시안을 제외하면 가장 큰 도시임이 분명할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 마지막 날 기분 한번 내려고 찾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양다리 스테이크에 비싼 생맥주 두 잔을 마시며 끝이 났다. 옛날에는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아니게 된 어느 여행작가가 쓴 책의 구절 중 여행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여행 1년은 일상 10년과 맞먹는다는 말.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수없이 떠오르는 너무 많은 생각에 머리가 터져버릴 거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건 여행이 주는 행복한 시련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기 전의 '나'와 하고 나서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거니깐.


 각설하고,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실크로드 여행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첫 번째 여정지 시안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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