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제시는 불쾌한가

감정의 뒤에 숨어있는 가격 책정의 구조

by 피디아

나는 온라인 게임을 좋아한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흔히 겪는 장면이 있다.(요즘은 거래소 덕분에 많이 줄어들었지만)


누군가 아이템을 판다고 채팅을 친다.

채팅을 읽은 한 유저가 이렇게 묻는다 "얼마에 파시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얼마 생각하시고 오셨어요?" 또는 "가격 제시해주세요."

그러면 채팅창에는 욕이 쏟아진다.

"지가 팔겠다며 왜 가격을 안 부르냐",

"호구 하나 걸리길 기다리는 중이네",

"사기꾼 마인드다."


이 반응은 거의 본능적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대부분 이 불쾌감의 정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지 "기분이 나쁘다"거나 "예의가 아니다"라는 식의 막연한 감정만 떠오를 뿐이다.

과연 이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정말 단순히 매너의 문제일까?



사인 간 거래, 반드시 판매자가 먼저 제시해야 하나?


냉정히 생각해보자.

온라인 게임의 거래는 보통 기업 대 소비자 간의 정찰제 거래가 아니다.

동등한 개인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환이다.

용산에서야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가 불쾌하지만, 꼭 온라인 게임에서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왜 꼭 판매자가 가격을 먼저 제시해야 하는가? 구매자가 먼저 가격을 제시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구매자가 가격을 먼저 말하면,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 호구가 될 수 있기 때문"

"그러니까 판매자가 먼저 말해야 한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 말이 맞다면, 반대로 판매자도 가격을 낮게 불러 손해를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어차피 둘이 가격에 동의하면 거래는 성사되고, 그게 바로 시장 원리 아닌가?

이런 반문은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비판은 "그냥 기분 나빠서"에 머무른다.

정찰제가 아니라면, 판매자에게 가격 제시 책임이 있다는 관념은 명확한 근거를 갖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불쾌감은 왜 이토록 강하게 반복되는 걸까?



그런데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 불쾌감은 생각보다 정당하다

이 문제는 단순한 예절이나 거래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협상의 구조와 정보 자체가 비대칭이고, 그 속에서 한쪽만이 실수할 위험을 감당하게 되는 불공정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1. 리스크의 비대칭성

판매자가 먼저 가격을 제시했는데, 너무 낮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팔지 않으면 그만이다. 거래는 파기되면 끝이고, 손해는 없다.

하지만 구매자가 먼저 가격을 제시했는데 그 가격이 시세보다 높았다면?

판매자가 "오케이" 하고 거래를 받아들이는 순간, 구매자는 되돌릴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된다.

말 한마디로 실질적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판매자보다 구매자 쪽이 훨씬 크다.


이게 바로 첫 번째 구조적 불균형이다.



2. 협상 기준선의 차이

판매자가 가격을 먼저 제시하면, 그 가격은 일반적으로 시장가를 기준으로 한 '기준선'이 된다.

구매자는 그 가격을 기준으로 더 깎거나 수용하는 선택을 한다. 반면 구매자가 먼저 제시하면, 그 가격은 자기 지불 가능 금액에 근거한 '기준선'이 된다. 판매자는 그것을 기준으로 거래를 수락하거나 약간 높이는 식의 조정을 시도한다. 즉, 판매자가 기준선을 제시할 때는 가격이 하방으로 조정될 여지가 열려 있고, 구매자가 제시할 때는 그 여지가 닫히거나 오히려 상방으로 열리게 된다.

최초 제안되는 협상의 기준가격이 훨씬 높아질 뿐만 아니라 거래 가격이 실제 시세보다 높아질 가능성, 즉 시장 구조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 역시 구매자가 먼저 부를 때 훨씬 크다.



3. 정보의 비대칭, 정보 교환의 방향 문제

판매자가 "얼마에 사실래요?"라고 묻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협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상대의 구매력 탐색이다. 구매력 탐색이라는 표현이 너무 거창하다면, "너 지갑에 얼마 들었는지 말해봐" 혹은 "너, 얼마까지 낼 수 있는데?" 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시장가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구매력과 구매 의사에 대해, 상대가 얼마나 호구인지를 판단하려는 수단이다. 이런 정보 흐름은 공정한 협상이 아니라,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최대 이익을 뽑아내기 위한 착취형 구조다.


그리고, 이 세가지 이유는 모두 '정보 교환의 비대칭'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유도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있어보이기 위해 세개로 부풀린거지, 결국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 하나이다.)




이래서 선제시가 욕을 먹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구조적으로 설명하진 못하지만, 그 구조에 내재된 불균형을 직감적으로 감지한다.

내가 먼저 말하면 손해를 볼 것 같고, 상대는 그걸 이용하려는 태도로 느껴진다. 이 거래는 이미 공정하지 않다.


그래서 불쾌한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매너가 없다"거나 "정찰제냐 흥정제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 책임, 리스크, 협상 기준선이 누구에게 유리하게 배분되어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선제시가 욕을 먹는 이유는 단순한 감정적 불쾌감이 아니라 구조에 기반한 불쾌감이다. 그 구조가 일방의 실수만을 유도하고 상대의 정보만을 끌어내는 왜곡된 거래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은, 그리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람들은 이 불공정의 구조를 의식적으로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직감적인 불쾌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구조가 가진 불쾌감을 직감하고 '무례함'으로, '불친절함'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경제적 구조에 대한 통찰이 숨겨져있다. 물론, 이것이 관습적으로 학습된 예절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고, 반드시 그 예절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일단 거칠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어쩌면 생각보다 직감과 직관, 이성과 논리의 간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넓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