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는 기계적이라고? 난 내가 인간적이라고 생각해

단, 고대 그리스 기준으로

by 피디아

요즘 'T'로 산다는 건 은근 억울한 일이다. MBTI 얘기다.

사람들은 T 유형이면 감정도 없고, 공감 능력도 부족하고, 심지어 인간미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뭐, 농담인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 아예 뜬금없는 이야기는 없는 법.

이성적인 사람은 '기계적이다'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니 농담도 당연히 그렇게 굴러가는 거고.


그런데 나는 조금 억울하다.

나는 T지만, 나름 다정하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지렁이도 안 밟으려고 애쓰고,

남들은 신파라고 무시하는 영화를 보고도 눈물콧물 쏙 빼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인간적인 게 뭘까?


요즘은 감정을 잘 느끼고, 잘 공감하고, 눈물 버튼이 많을수록 인간적이라고 여긴다.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는 사람은 "기계 같다"는 말로 농담의 타깃이 된다.

물론, 'F'들에게도 역시 뭐만 하면 눈물부터 흘린다는 식의 농담이 던져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인간적이지 않다'라고 놀리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T라서 억울해요 가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의 기준에 대한 질문이다.




언제부터 감정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었을까?

기계가 없던 시절, 인간의 비교 대상은 자연이나 동물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인 동물"이라 불렀다.

자연은 예측할 수 없고, 동물은 본능에 휘둘렸지만,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였다.

즉, 이성을 따르는 게 곧 인간적인 것이었고

감정이나 본능에 휘둘리는 건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요즘 ‘비인간적’이라 놀림받는 T는,

고대 기준으로 보면 꽤나 인간적인 셈이다.

반면 요즘 '인간미 넘치는 F'는,

그 시절 기준으로는... 어쩌면 비인간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재밌지 않은가?


이 흐름은 근대 계몽주의까지 이어진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 존재의 중심이던 시대였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결국엔 나 자신까지 의심의 도마 위에 올릴 줄 알아야 '인간'이었다.


반면 감정은 진리를 가리는 연기처럼 여겨졌다.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인간의 사유도, 관찰도, 탐구도 흐려진다고 믿었다.


그 시절에는 나 같은 T가 철학과로 스카우트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넌 정말 인간적이야!'라고 따스한 격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다르다.



기계가 등장하고, 감정 없는 연산이 가능해진 순간,

우리는 인간성을 다른 속성에서 찾기 시작했다.


인간은 동물보다 기계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기계와의 차이를 '인간성'의 핵심 요소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성을 규정하는 영역이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옮겨졌다.

실수하고,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덕목이 되었다.

이제 인간적인 것은 논리보다 감정, 객관보다 공감에 가까워졌다

이런 감정 중심의 인간상은,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 흐름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의 밈 문화 속에서도 이어진다.

"야 너 기계 같아", "넌 감정이 없잖아~"

이런 농담 속엔 시대가 정의한 인간다움이 담겨 있다.

그 기준은 시대마다 달라졌고, 지금도 변하는 중이다.




솔직히, T라서 억울해요 라는 푸념으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억울해하며 열변을 토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아무리 기계 같다고 정나미 없다고 놀린다고 하더라도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억울함이 아니라 이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모든 철학자들은 이 질문을 붙잡고 씨름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 시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우리는 언제나 인간이었지만, 인간다움을 규정하는 답변은 늘 달라진다.


여기에는 명징한 질문도 없고, 무결한 해답도 없다.

즉, 완성된 철학이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인간성은 또 다르게 정의될 것이다.

언젠가 AI가 감정까지 모방하고 공감하는 척까지 하게 되면,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찾아나갈 것이다.


아마 그때도, 우리는 서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너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고? 너무 비인간적이다"

그러면―물론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나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꽤나 인간적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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