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스승의 날 카네이션을 받는 미래는 언제쯤일까

by 피디아

교사로서 수업을 하고 나서,

습관처럼 '질문 있나요?'라는 말을 던진다.

때로는 질문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와... 완벽한 수업이었나 봐... 질문이 하나도 없을 정도라니... 다들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를 한 거지?'


완벽한 착각이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때로는 오히려 학습의 실패를 의미한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상태'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 이것은 교실에서 자주 보이는 광경이다.


오히려, 잘 된 수업이고 동시에 수준이 높은 수업일수록 질문이 많아지고,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사고의 오류를 교정해 나간다.


질문이 없는 수업은 두 가지 가능성을 내포한다.

모두가 완벽하게 이해했거나,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이거나.


그런데,

질문이 없는 교실의 정적을, AI가 읽어낼 수 있을까?

학생들이 모르는 걸 모르는 그 순간을,

기계는 감지할 수 있을까?





어느 분야는 안 그러겠냐만,

교육계의 최근 화두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다.

AI가 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는 주장이 있다.

"그래도 인성 교육은 사람이 해야지."


물론 일리는 있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AI에게 인성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감성적'으로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 접근이 다소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AI에게 인성교육받으면 안 되나?

반드시 인성교육을 사람에게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AI가 인간의 교육을 대체하기가 '아직은' 요원한 이유로

다른 이유를 추가로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직감적 판단'과 '메타인지적 접근'이다.




교육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 가운데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이라는 이론이 있다.

ZPD는 학습자가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으면 도달할 수 있는 학습 영역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방정식 문제를 풀다가 막혔을 때,

교사가 결정적인 힌트를 주면 갑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바로 ZPD다.


ZPD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학생이 무엇을 모르는지 직감적으로 포착하고 개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사는 학생이 설명을 듣는 동안 잠깐 미간을 찌푸리거나,

반복되는 실수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혼란을 직감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학습 결과에 대해서 평가할 때도, AI는 단순히 '틀렸습니다'라고 알려주지만,

왜 틀렸는지, 어떤 사고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수학 문제에서 같은 오류를 반복해도, AI는 그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결과만을 보여줄 뿐이다.

반면, 교사는 문제를 푸는 방식을 보고 어디서 논리가 어긋났는지 직감적으로 판단하고,

그 지점을 바로잡아준다.



메타인지(Metacognition)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자.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맨 처음 도입부에서 언급한 상황이다.

교사는 실시간으로 학습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수업의 내용이 어렵지 않은가? 이해 과정에서 중간 연결이 헐거웠나? 개념의 설명이 복잡했나?

그리고 학생의 이해 상태에 맞춘 설명이나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학생이 AI를 활용하여 공부할 때, '이게 왜 그렇게 되는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떠올리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다면, AI는 다시는 질문을 유도하지 않는다.

반면, 교사는 학생의 질문을 먼저 유도해 낼 수 있다.

학생의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할 때,

그 틈을 교사의 경험적 감각으로 메우는 것이다.


게다가, AI의 답변이 올바른지 학습자 스스로 판단해야만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메타인지'의 한계가 인간 학습자뿐만 아니라 AI에게도 적용되는 가장 큰 취약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성형 언어 모델이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인공지능 환각(Hallucination)'이다.

인공지능 환각이란 AI가 실재하지 않는 논문을 인용하거나,

틀린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답변하는 사례를 의미한다.


즉, AI는 자신의 답변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AI의 답변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이용자의 비판적 사고나 재검토 명령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AI를 통해 학습한 학습자가, AI의 답변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 환각 문제는

학습 내용이 심화될수록, 함께 심화될 것이다.

학습자는 AI를 통해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고,

AI는 학습 내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잘못 이해한 수학 공식을 AI가 반복적으로 설명하면,

학생은 그 오개념을 더 견고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될 때, 결국 학습자는 잘못된 지식을 확신하게 된다.



구조적으로는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AI를 통한 학습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AI 기술은 평준화된 수준의 학습을 제공하는 면에서 한계가 있다.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을 사용할 때도, 복잡한 사고 과정을 요구하는 질문일수록 고도화된 답변이 나오며, 단순한 질문에 대해서는 단편적 응답만이 반복되는 것이 그 예시다.

일부 Adaptive Learning 시스템은 학습자의 수준을 분석하고 조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는 표면적인 성취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육―특히 공교육은 모든 학습자에게 질적 평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학습자의 직관적 오류를 바로잡고 메타인지적 개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균일한 학습 경험 제공은 아직 요원한 일이다.


물론 몇몇 AI 시스템의 경우 위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고,

언젠가는 충분히 따라 잡힐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챗GPT와 같은 대다수 언어 모델로 상징되는 AI의 혁신 충격과는 그 궤가 다르며,

경제적인 비용도 결코 작지 않다.


예를 들어, 최신 Adaptive Learning 시스템은

일부 학습자의 이해도를 분석하고 조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는 개별화된 학습 경로에 수천 대의 GPU 클러스터와 연산 자원을 요구한다.


AI가 공교육 전반에 걸쳐 이러한 수준의 정교한 개입을 보장하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AI는 인간 교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다.




단순히 '아직은 AI는 못해요'라는 낙관적인 단정만은 아니다.

인관의 직관을 컴퓨터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퍼지 추론(Fuzzy Inference)이 필요하다.

인간의 직관적 판단은 0과 1로 이뤄진 이진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퍼지 추론은 0과 1로만 구분할 수 없는 애매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논리 체계이다.

예를 들어, 학생이 '대충 이해한 것 같다'라는 모호한 상태를 교사는 직감적으로 파악하지만,

AI는 이를 수치화하지 않으면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AI가 사용하는 퍼지 추론의 수준은 아직 사람의 직관적 판단에 미치지 못하고,

실제로 공장 자동화나 AI 가전제품 같은 비교적 단순한 환경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고전 컴퓨팅의 계산 방식으로는 직관을 모사할 수 있을 정도로

퍼지 추론을 고도화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수준의 직관적 판단을 완벽하게 모사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고도화된 기술―예를 들면 양자컴퓨팅과 같은―이 필요하다.


게다가 설령 훨씬 고도화된 연산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메타인지적 판단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는 여전히 아니다.

직관과 감각의 모방을 위해서는 연산 능력뿐만 아니라 추가로 추론 능력, 맥락의 이해,

실제적 경험 등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컴퓨팅은 이산적(Discrete) 연산에 강점이 있지만, 인간의 사고는 연속적(Continuous)이며, 모호함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대충 5시쯤 만나자"를 이해할 수 있지만, AI는 "5시 00분 00초"처럼 명확하게 정의된 시간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설령, 여기에 모호함을 추가한다고 하더라도, 표준편차와 ±로 범위만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인간적 감각을 흉내 내려면, 단순한 정보 처리 이상의 감각과 맥락적 이해, 추론 능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직관은 그만큼 고도의 작업이며,

비록 컴퓨터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아직은 컴퓨터로는 흉내내기 쉽지 않은―정확히는 매우 고가의 비용이 소모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능력이 교육에서의 핵심이다.




언젠가는 AI가 교육을 완벽히 대체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지금도, AI를 통해 많은 학습자들이 자기주도학습을 수행하고 있다.

AI가 학습자의 미세한 이해 부족조차 감각적으로 파악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학습자의 질문을 유도하고 직관적으로 이해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교사의 영역이다. 이 직관적 영역이 AI에게 넘어갈 날은, 적어도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수업이 끝난 뒤 질문이 없는 교실, 학생들의 머리 위에 띄워진 어색한 '물음표'를 깨부술 '느낌표'를 던지는 역할은 인간 교사의 몫일 것이다.





P.S. 글쓴이가 교사인지라, 교육에서 AI의 대체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전망한 글입니다. 말이 전망이지 AI 기술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에 근거한 기술적 전망이라기보다는 현업 종사자로서의 '막연한 기대'에 가까우니, 설령 너무 낙관적으로 읽히더라도,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스승의 날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AI로 대체될 거라고 전망하는 건 너무 씁쓸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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