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좋아하는 똑똑한 당신에게

by 피디아

우리는 1장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어쩌면 나 자신이 '게으른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불완전하고 게으르며, 때로는 멍청하기까지 한 우리 인간들이 모여 만든 더 큰 단위, 즉 '사회'와 '국가'라는 시스템은 과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것일까? 이제 우리는 그 거대한 시스템을 이해하려는 가장 강력한 도구, '구조'의 문제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들이 왜 그토록 구조에 매혹되는지, 그리고 그 명료한 시선이 때로는 왜 위험한 착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하여, 게으른 바보가, 감히 한마디 해보려 한다.


【제1부 - 제2장. 사회라는 거대한 집】

일곱 번째 글: 구조를 좋아하는 똑똑한 당신에게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들은 세상의 현상을 구조화해서 보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은 복잡하고, 사람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똑한 그들에게 세상은 무질서한 혼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은 구조화된 시선을 통해, 이 무질서 속에서 거의 본능처럼 질서를 찾아내려 한다. 그리고 똑똑할수록, 현상을 구조화해서 보는 것이 더 직관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편이고.


이 과정은 효율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임은 개인이 아닌 구조로 향하고, 분석하는 자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리고 구조가 정교할수록, 개념이 날카로울수록 현실은 쪼개지고, 설명은 세련되어 보인다. 그렇게 똑똑함은 구조와 함께 진화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구조로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시도는 얼핏 지적이고, 때론 매혹적이다. 개인이나 현상은 통제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구조는 훨씬 명료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구조로부터 유도된 결과물이 아니다.


구조를 좋아하는 이들은 사람들을 마치 부속품처럼 다룬다. 그들의 눈에 사람은 '구조 내 변수'이며, 예측 가능한 톱니바퀴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A는 자극에 반응하고, B는 그 반응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전체 결과는 예측된 수치 안에 수렴한다." 그 구조는 명료하다. 단 하나, 사람만 빼고.


우리는 명료한 걸 좋아한다. 구조는 명료함을 추구하지만, 그 명료함을 달성하기 위해 현실의 복잡성을 생략할 수밖에 없다. 모든 변수를 반영하려는 구조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예측 가능성을 상실하여 관리와 분석이 불가능한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특수성과 맥락은 잘려나간다. 이것이 구조의 근본적 한계다. 그렇게 '명료함'은, 때로 '단순함'의 다른 표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한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때로는 비이성적인 존재이다. 아무리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복잡성은 구조의 그것을 넘어선다. 인간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동시에 비이성적이며, 서로 다른 기준과 판단을 가진 집합체다. 슬픔, 감정, 질투, 미련, 충성심, 망설임, 갑자기 찾아오는 철학적 회의 같은 것들. 현실이 구조에서 이탈하는 순간은 언제나 인간 때문이다. 그 이탈은 오류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구조는 인간의 '집합'이다. 인간이 구조의 '부속'이 아니라. 똑같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만약 인간이 구조의 부분이라면, 구조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사실은, 구조가 인간의 집합이며, 우리는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복잡성을 단순화한다.


구조를 통해 현실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이다.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다루기 위해 인간은 구조화된 틀을 사용한다. 문제는, 그 구조를 절대적 진리로 여기고, 인간의 복잡성을 배제할 때 발생한다. 즉, 구조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현실과 구조―그 사이에 인간이라는 변수에 대한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 바로 그 틈에서, 구조는 도구가 되고, 현실을 따라가게 된다.


'개념은 틀릴 수 있다'. 이것은 중요한 말이다. 개념이 현실을 왜곡하는 이유는, 복잡성을 통제 가능한 변수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 도덕적 딜레마 같은 비정량적 요소는 잘려나간다. 예를 들어, 회사의 인사 평가 시스템은 직원의 실적만을 수치화하지만, 그 사람이 겪는 좌절, 창의적 시도, 동료와의 관계 같은 비정형적 경험은 반영되지 않는다. 그 결과, 구조는 현실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만다.


바로 그 순간, 개념이 현실과 어긋나는 순간의 태도가 중요하다. 개념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이지, 현실을 강제로 구겨넣기 위한 조형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 모델이 아무리 완벽하고, 경제적으로 최적의 선택을 하는 사람을 상정하더라도, 썸녀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남자는 그 모델을 완벽하게 부순다. 그럼에도 개념이 현실과 어긋날 때, 현실을 개념에 우겨넣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 개념상의 예외사례'로 간주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고자 하더라도, 사랑에 빠진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경제학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개념이든지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고안된 것이지, 현실이 개념에 맞춰 바뀐 적은, 내가 아는 한 없다. 설령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건 개념을 통해 현실의 오류를 해석한 것이지, 개념이 현실을 구성하거나, 현실이 개념에 역으로 수렴한 것은 아니다.개념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이지, 그 자체로 현실을 창조하거나 조작하는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괴리는, 덜 다듬어진 개념에 현실을 무리하게 끼워넣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구조지상주의자들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유의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사유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말이다.


완벽한 구조는 없다. 설령 그런 구조가 있다 해도, 현실과 멀어졌다면, 그것은 빛이 바래버린 지도나 다름없다. 다만, 구조를 사랑하는 당신이 개념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인간은 본디 세상이 설명되기를 바라는 존재이고, 어쩌면 당신이 똑똑하기에 '구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좀 더 또렷해 보이고 다루기 쉬웠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완벽한 이론도 있고, 놀랍도록 정교한 모델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현실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구조를 통해 감탄을 이끌 수는 있겠지만, 그 감탄은 현실에 닿지 못한 채 메아리처럼 흩어져버릴 것이다. 구조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지만, 그 자체로 현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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