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현실의 복잡함을 외면한 채 '구조'의 명료함에 기대려는, 똑똑한 사람들의 지적인 태도가 가진 위험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만약, 이 사유 방식이 하나의 거대한 '학문'이 되어 20세기를 지배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 우리는 '구조주의'라는, 이름부터 있어 보이는 이 강력한 사상이, 그 명석함의 그림자 뒤에서 우리에게서 무엇을 지워버렸는지, 구조에 휩쓸려나간 피해자들의 명단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제1부 - 제2장. 사회라는 거대한 집】
두 번째 글: 구조와 구조주의가 지우는 것들
우울증 환자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나 하나 정도는 없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 무서운 것은, 이 독백이 생명윤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거대한 사회 '구조'의 관점에서는 냉정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구조는 사람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사람 하나 정리된다고 해서 어지간해서는 개선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구조주의자'들은 그 구조를 수정하면 세상이 나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의 구조는 사람 없이도 굴러가고, 사람 위에 존재하며, 사라진 사람을 잊는다. 사람이 사라진 순간, 시스템은 경보음을 울리지만, 마치 스마트폰 알람처럼 이내 꺼져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구조로 설명하려는 구조주의의 가장 큰 윤리적 허점이 드러난다. 구조는, 그리고 구조주의는, 필연적으로 개인을 지우려고 한다.
구조주의적 시각에서는 개인의 특성은 구조 속에서 희미해지고, 때로는 구조의 완성을 위해 개인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학교 폭력은 가해자나 피해자의 책임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의 결함으로 설명되고, 빈곤 문제 역시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결함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시각은 윤리적으로 정당해 보인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개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실패는 구조의 책임이 되고, 사회의 책임이 되니까. 어떤 면에서는 꽤 정의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구조는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희미하게 만든다. 책임이 구조로 전이될수록, 개인은 구조 안에 묻히고 사라진다. 구조가 강화될수록, 개인은 통계 수치나 평균값으로 대체된다. 결과적으로, 구조적 틀 안에서 개인은 하나의 부품이 되고, 책임의 주체성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구조적 무감각은 윤리적 판단을 흐리게 하고, 마침내 개인을 사라지게 만든다.
1. 개성 (Individuality)
학생 A는 평균 성적 85점, 노동자 B는 생산성 지표 120%로 환원된다. 이들은 이름도, 개성도, 존재도 없는 숫자로만 남는다. 창의성이나 독창성은 구조의 계산법 안에서 '오차'나 '통계적 잡음'으로 처리되고, 인간의 유일함은 구조의 복잡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전락한다. 구조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간의 개성을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통계로는 기록되지만, 현실에서는 지워진다. 창의성은 '데이터 노이즈', 개성은 '변동성'으로 분류될 뿐이다. 결국, 인간의 개성은 최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효율성을 위해 사포에 쓸리듯 갈려나간다. 그리고, 갈려나간 단면은 다시 해석할 수 없다.
2. 감정 (Emotion)
구조는 감정을 통계치로만 다룬다. 불만율 20%, 만족도 85%라는 숫자는 존재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개인의 고유한 경험은 사라진다. SNS 상에서 수천 개의 악플이 쏟아지더라도, 그것은 '대중의 의견', 혹은 'SNS 구조의 한계'로 환원된다. 그 악플 한 줄 한 줄이 어떤 사람이 작성하였는지, 누군가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구조적 시각에서 관심 밖이다. 슬픔, 기쁨과 같은 복잡미묘한 감정들은 '좋아요'의 개수와 '조회수'의 숫자로 정량화되며, 감정적 경험들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평균적 수치로 분류되고, 평균에서 벗어난 감정들은 '오차값'으로 제거된다. 살아남은 데이터는 숫자로만 기억되고, 그 뒤에 있던 맥락은 사라진다.
3. 다양성 (Diversity)
구조적 모델은 평균적 인간을 전제하기에, 평균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오류로 간주된다. 정책 설계 시 소수자나 특이한 경우는 비효율로 처리되어 고려되지 않는다. 교육 제도에서 창의적 학습법보다 평균 성적 향상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그렇다.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구조는 표준화된 인간을 지향한다. 현대 사회에서 '다양성의 존중'은 종종 진정한 이해에 근거한 '존중'이 아닌, 이해의 '포기'로 바뀌었다. 우리는, 어느새부터인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잘 모르겠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구조는 이들을 '예외'로 처리하고, 윤리적으로는 '그냥' 받아들이는 이 과정이, 현실에서의 윤리적 괴리감을 낳고 있다.
4. 존엄성 (Dignity)
구조는 인간의 존엄성조차 수치로 환원한다. 뉴스에서 "인명 피해 3명 발생"이라는 문장은 구조적 시각에서 단지 "3개의 손실"로 기록된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업의 구조조정에서 잘려나간 수백 명의 직원들은 '리스트'에 이름을 남기지만, 그들의 사연은 보고서 한 칸에 숫자로 갇혀 버린다. 기후변화로 인해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지만, 그들은 '이주자 수'로만 표기된다. 구조는 사람의 고유한 삶을 '관리 가능성'으로 분해하고, '수치화'하여 분석한다. 구조는,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지만, 사람을 '이해'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무능하다.
모든 것을 구조로 해석하고자 하는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은 인간을 구조 속에 더욱 단단히 묶어두고, 익명성과 책임 회피를 정당화한다. 구조가 커질수록 개인의 책임은 구조의 문제로 전이된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수많은 투자 은행들이 파산했지만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 중 누구도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CEO들은 구조적 결함이라며 책임을 전가했고, 실질적 책임은 증발했다. 구조는 사람을 지우고, 책임도 함께 지운다.
또한 구조주의적 사고에서는 개인이 익명화된다. 대규모 조직 안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는 '대중의 의견' 속에 묻히고, 개인은 '구조'라는 그늘에 숨어 자신의 비윤리적 행동을 정당화한다. "나는 그저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구조가 개인을 이용하듯, 개인 역시 구조와 구조주의를 이용하려 한다.
결국 구조화된 사고에 익숙해지면, 비구조적 사고를 멈추게 된다. 사회 문제를 생각할 때, 시스템적 원인만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빈곤은 시스템의 문제, 폭력도 시스템의 문제, 모든 것은 구조로 설명되고, 그 안에서 개인은 잊혀진다. 하지만 같은 결손가정에서,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성장한 두 아이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을 구조는 설명하지 못한다. 구조는 개별적 맥락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구조는 사람을 흐릿하게 만든다. 책임을 전가하고, 감정을 숫자로 환원하며, 다양성을 무시하고, 존엄성을 데이터로 처리한다. 그런데, 구조주의적 시각은 이런 현상을 정당화하며, 개인의 상실을 당연하게 만든다. 구조는 사람을 설명할 수 없으니, 사람을 없애버린다. 구조주의는 그 상실을 당연하게 만든다.
그러나, 구조가 모든 것―개인의 기질, 철학적 고민, 그만의 독창성과 같은―을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인의 윤리적 저항 가능성은 남아 있다. 우리는 구조의 내부에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 내부에서 흐릿해진 개인의 존재를 되찾아야 한다. 구조가 아무리 강력해도, 그 속에서 개인이 윤리적 자각을 통해 저항하는 한, 그 존재를 완전히 삭제할 수는 없다. 구조적 무감각을 깨부수고, 통계 속에 묻힌 인간의 존엄을 다시 드러내는 것. 그것은 결국, 구조 내에서 존재하는 개인의 선택이다. 구조가 흐릿하게 만든 것들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저항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그 저항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윤리적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