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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by 작은영웅

뷔페나 한정식을 좋아한다. 단일 메뉴보다 여러 가지 음식이 즐비하게 차려진 식탁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마도 한 가지 음식에 만족을 못해서일 것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봐야 잘 먹었다는 느낌도 있고 만족감도 큰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가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딱히 당기는 게 없어서 고심한다.


이런 성향은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그게 인간관계이다. 겉으로 보면 친구가 엄청 많고 마당발인 사람, 그게 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사적인 모임이 있고, 정기적으로 여행이나 공연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주변 사람들에게는 핵인싸로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이게 좀 실속이 없다. 여러 가지 음식이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를 맛보고 나면 배는 부르지만 뭘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모임에서 잔뜩 떠들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도 없고 마음에 남는 사람도 없다.


개인적인 일로 한동안 잠수를 탄 적이 있다. 몇 달간 모임이 없이 지냈다.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만남을 주선한 사람은 나였구나. 내가 연락을 안 하니 모이지고 하는 사람도 없네. 매우 심심하고 외로운데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싶은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고 진정으로 내 마음을 열어 보여줄 만한 친구는 없었던 것이다. 매번 만나서 신나게 떠들었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만난 사회적 친구들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친구들을 대하는 내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일단 먼저 대접하는 쪽보다는 대접을 바라는 쪽이다.

난 남들에게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는 오 남매 중 큰딸로 자랐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렇게 손위 사람들 사이에서 보호를 많이 받다 보니 막내 기질이 몸에 배게 되었다. 그래서 모임 안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며 분위기 메이커 노릇은 잘하지만 개인적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배려와 돌봄에는 취약했다.


선배들과의 모임에서 막내에게 바라는 부지런함과 봉사, 후배들과의 모임에서 왕언니에게 바라는 푸근함과 베풂, 또래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베프에게 바라는 경청과 다정함,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부족하다. 좌중을 웃기는 재치 있는 말솜씨와 다독으로 다져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만 친밀한 사람 하나는 나에게 없었던 것이다.


갖가지 요리를 많이 먹었지만 기억에 남는 요리가 없는 나의 음식취향처럼, 많은 친구를 만나지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없는 나의 인간관계를 이제는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길을 걷다가 하늘이 예뻐서, 바람이 좋아서, 노을이 고와서 네 생각이 났노라고 얘기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뷔페 음식이나 한정식처럼 욕심스럽게 많은 음식을 먹고 부대끼는 관계가 아닌 삼계탕이나 동태탕처럼 단순하면서도 몸에 위로가 되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겠다. 계절이 바뀔 때나 몸이 허해진다고 느껴질 때 생각나는 친구가 되어야겠다.


혼자서 외로운 날,

언제든 불러 내면 기꺼이 손 내밀어줄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어느 날, 이 글을 쓰고 있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같은 것을 즐길 줄 알면서, 같은 감정을 느끼는 친구가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 친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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