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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포레스트 Oct 03. 2024

껄무새

껄껄 그리고 껄 



'껄무새'란 '그때 나도 그 아파트 살걸', '그때 그 주식 팔아버릴 걸'처럼 '~할 걸'이라는 표현을 앵무새처럼 습관적, 반복적으로 내뱉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말이다.



결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껄껄껄 하는 것들이 꽤 있다.

 

사실은 참 많다.  




첫째, 집안을 볼 걸


예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세상 속물 같고 꼰대 같아서 듣기 조차 싫어했던 표현이다. 요즘이 어떤 시댄데 사람이 좋으면 된 거지 집안을 보라는 거야 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땐 집안을 보고 시집간다고 하면 막장드라마에 나올 법한 속물인 인간들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지금은? 


고개를 위아래 30센티 왕복으로 10번 20번 끄덕여도 부족하다. 

집안을 본다는 건, 한 사람을 둘러싼 이면의 양육환경을 두루두루 다 살펴본다는 것. 어떤 부모님, 형제들 사이에서 어떤 양육방식과 관계 속에서 자라왔는지는 한 인간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사실 연애할 땐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사람을 보고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콩깍지가 쓰여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돈공부 할 걸


왜 돈 없으면 아끼면 된다고 생각했니 과거의 나야. 과거의 부모님 세대 중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 또한 대출은 망하는 지름길이라 여기셨다. 양쪽 집 도움 하나 없이, 사실 신랑도 그땐 정말 돈이 1도 없을 때라 신혼여행도 내 돈으로 갔던 그때. 무지했던 우리는 정말 쉽게 돈을 복사할 수 있었던 동네를 멋모르고 주거지로 선정해 두곤 우리의 첫 신혼집을 월세로 구했었다. 그리곤 몇 년 후 그 동네 집값이 폭등했다는 흔하디 흔한 슬픈 이야기.


사실 아이를 낳고 휴직한 5년의 기간 동안 정말 처절한 시간이었다. 부부 중 제대로 버는 사람 하나 없이 친정에서 머물며 육아수당에 겨우 의지할 때도 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못 벌면 아껴 쓰면 되지머.' 


휴직 4년 차쯤부터는 정말 가난함에 몸서리치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는 바닥 같은 생활. 엄마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엄마 또한 너무나 힘들던 때라 말할 수도 없었다. 아니 말하기가 정말 죽도록 싫었다. 장 볼 몇 만 원이 없어서 내 생리대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사야 했던 그 시절을 보내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정말 이다지도 미련하게 눈을 감고 살았구나. 눈을 감고 산 세월만큼 비참해지는 거구나.  





셋째, 젊었을 때 가꿀걸


예전엔 피부가 참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까무잡잡하지만 건강한 피부, 잡티 없고 투명한 피부라 아무 화장품이나 발라도 트러블 없이 맑게 유지가 되었다. 20대부터 아이크림을 바르고 마사지를 받고 관리를 한다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서 나에게는 저런 유난을 떨 필요가 없을 거라고 자만했었다. 하지만 2번의 출산과 저 세상 텐션을 가진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거울 속 내 얼굴을 마주할 여유가 전무후무했고, 결국 태어난 지 40년이 된 나의 피부에는 출처 없는 주름과 잡티들이 가득했다.





넷째, 나에 대해 더 고민해 볼 걸 


"엄마가 사주 보러 갔었는데,,, 에이 말 안 할래."

"뭔데? 왜 말 꺼내놓고 말 안 하는데!!!!."

"아니, 니는 고마 선생이 딱 체질이라더라. 너무 잘 맞데."


그날 이후로 나의 길은 교사로 못이 박혀버렸다. 


내가 정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정한 것도 아니고 

지금의 엄마는 기억도 나지 않을 사주명리학집에서 

나의 직업이 정해져 버렸다....


사실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아채고 마음을 표현하길 좋아하는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참 잘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마주한 나의 내면아이는 

항상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중요시하는 나 때문에 항상 외로웠고 어른스러워졌어야 했다. 

오히려 감정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채는 나의 기질은 항상 다른 이를 신경 쓰느라 나와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것이다. 


여전히 나는 아이들이 예쁘다. 

아이라서 그 자체로 완벽하고 예쁘다. 


하지만 이젠 나를 위해 살고 싶다.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챙겨줘야 하는 삶에서 

앞으로는 누구보다 나의 내면을 먼저 살피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지난 삶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죄책감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나 스스로를 재판정에 세우는 일부터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크던 작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의 총합이 

내 삶을 천천히, 하지만 묵직하게 움직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한다.

그리고 느낀다.

내 삶의 뱃머리가 천천히 방향을 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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