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넘도록 운전을 못 하는 남자의 퇴근길
타인의 지갑엔 있지만 내 지갑엔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쉰을 넘긴 사내의 지갑이라면 으레 꽂혀 있어야 할 운전면허증 한 장이 말이다. 면허를 딴 적이 없으니, 가속 페달의 묵직한 저항을 발바닥으로 느껴본 적도, 백미러 속에 담긴 세상을 내 손으로 조율해 본 적도 없다. 이 시대에 오십 대 남자가 운전을 못 한다는 것은 단순히 편리함을 포기했다는 뜻을 넘어, 종종 성인 남성으로서의 어떤 자격을 상실한 것처럼 읽히곤 한다. 면허증 한 장이 이토록 많은 것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이다.
대화 도중 "운전을 하지 못합니다"라고 고백할 때마다 마주하는 시선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어떤 이는 남의 은밀한 흉터를 목격한 사람처럼 당황하며 황급히 눈길을 거두고, 어떤 이는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음주운전의 전력을 상상하며 면허 취소의 가능성을 계산하느라 눈을 가늘게 뜬다. "아니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 대답 뒤로 쏟아지는, 희귀 동물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들. 나는 그 시선들을 오래 입어 몸에 밴 낡은 외투처럼 무덤덤하게 걸치고 산다.
대도시의 지하철망 아래에서라면 이 결핍이 적당히 숨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은 통영이다. 바다를 낀 소도시에서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는 것은, 남들이 거침없이 건너는 거리를 몇 배의 시간으로 지불하며 살겠다는 조용한 선언과도 같다. 버스 배차 시간을 확인하고, 정류장까지의 길을 묵묵히 걷는 일. 그것이 내게 주어진 일상의 무게이자, 내 고유한 보폭이다.
나의 하루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의 보조석에서 시작된다. 조금 이른 출근길,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통영의 아침은 차갑고도 투명하다. 회사 정문에 도착하면 나는 보조석 문을 연 채 잠시 멈춰 선다. 차에서 내려 몸을 굽혀 운전석의 아내와 눈을 맞추는 것은 우리 부부의 오래된 의식이다. "오늘도 파이팅." 짧은 기도를 나누듯 주먹을 쥐어 보이고 돌아서면, 내 등 뒤로 아내의 차 엔진 소리가 나지막하게 머물다 떠난다.
언젠가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내가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왜 차를 돌리지 않고 기다리느냐고. 나의 물음에 아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당신 뒷모습을 보느라고. 씩씩하게 걷는 당신 어깨가 꽤 멋져 보이거든."
나는 대답 대신 침을 한 번 삼켰다. 오십 대 사내에게 건네는 어깨가 멋지다는 말은 체격에 대한 찬사가 아니다. 그것은 운전대 대신 생의 무게를 두 어깨에 올리고, 제 발로 묵묵히 걸어가는 한 남자의 보폭에 대한 예우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이후 걸을 때 어깨를 조금 더 편다.
퇴근길은 온전히 내 두 다리의 몫이다. 회사 정문에서 집 현관까지는 정확히 이십 분. 시속 사 킬로미터로 이동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길바닥에 버리고 다시 그만큼의 것을 주워 담는다.
길은 바다를 곁에 두고 이어진다. 통영의 바다는 퇴근 무렵이면 낮의 푸른빛을 벗고 조금 더 짙고 묵직한 색으로 가라앉는다. 어떤 날은 비릿한 생명력을 날 것으로 뿜어내지만, 어떤 날은 갓 깎아낸 수박 껍질처럼 맑고 서늘한 향을 내보낸다. 수면 위로 숭어가 제 몸을 힘껏 던져 공중을 가를 때나, 멸치 떼가 윤슬보다 눈부신 은빛 궤적을 그리며 무리 지어 흘러갈 때면 나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남들의 차창 밖으로는 찰나의 잔상으로 스쳐 지나갈 풍경들이, 내게는 아주 느린 슬라이드 필름처럼 한 장 한 장 다가와 가슴 안에 쌓인다. 이 세밀한 이야기들을, 차 안에 있었다면 나는 끝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육교에 다다르기 전, 세차장 귀퉁이에 사는 흰 시바견 '봉달이'와 인사를 나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꽤나 귀한 출신 성분이라는데, 녀석은 세차장 물소리 사이에서도 내 발소리를 기막히게 알아챈다. 멀리서 나를 발견하면 늑대를 닮은 하울링으로 환대하며 허공을 향해 몸을 날린다. 나는 가방 속에서 늘 준비해 둔 간식 봉지를 꺼낸다. 녀석의 입가에 간식을 물려주고 거친 털을 쓰다듬는 짧은 접촉. 그 온기가 손바닥에 남는 순간, 직장에서 묻혀 온 팽팽한 긴장이 탁 하고 풀린다. 짐승의 온기가 사람을 구하는 순간이란 이런 것이다.
마지막 관문인 육교 위에 서면, 발아래로 퇴근길 차들이 붉은 후미등을 켜고 강물처럼 흐른다. 저마다의 집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 가장 낮은 자리에서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오늘 하루도 참 고생 많았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 건네는 이 위안은 차창에 가로막혀 닿지 못하겠지만, 육교를 내려오는 내 어깨 위에는 도리어 고스란히 내려앉는다. 타인에게 건넨 연민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내일 다시 걸을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내 몸에서는 더 이상 사무실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신 바닷바람과 흙내음, 그리고 봉달이의 거친 온기가 스며 있다. 비로소 아내에게 다정하게 인사할 준비가 된 셈이다.
나는 오늘도 이십 분의 고요를 천천히 건너, 세상에서 가장 안온한 나의 영토로 돌아왔다. 면허 없는 사내의 걸음은 더디지만, 그 더딤 속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숭어의 도약, 멸치 떼의 은빛 물결, 봉달이의 체온, 육교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붉은 불빛들. 그리고 오늘도 차를 바로 돌리지 않고 내 뒷모습을 바라봐 준 아내.
나는 그것들을 두 손에 가득 쥐고 문을 연다.
나를 반기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