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합격 문자를 받던 날,
나는 울지 않았다.
그냥 멍했다.
2년 간의 시간,
집 담보 추가대출,
6살 딸아이와의 이별 같은 평일들,
100만 원짜리 아줌마.
그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는데, 아무 감정이 없었다.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살았더니, 기쁨이 오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한다.
딸아이와 둘이 남겨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기술도 없고, 경력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고른 게 공부였다.
"할 줄 아는 건 없는데, 공부는 할 수 있잖아."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공부도 못했는데...
첫 해는 시늉만 했다.
"좀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머리 팽팽 돌아가는 20대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자만이었다.
당연히 1차 낙방. 턱도 없는 점수로
그 뒤 1년을 이렇게 살았다.
딸아이 병원, 한 해에 손에 꼽을 정도
명절 한 번도 안 갔다
어버이날도, 경조사도 없었다
아파도, 눈이 와도, 딸아이가 아파도 — 아침마다 책가방 들고 독서실
밤 9시가 넘어야 엄마 얼굴을 보는 6살짜리가 꼬맹이가 있었다.
포기할 수도, 계속할 수도 없는 상황.
그냥 했다.
슬럼프를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 1년 동안, 하루에 공부 1시간 덜 하면 죽는 줄 알았다.
9급이다.
말단이다.
칼퇴의 허상, 경직된 조직!
화려한 것 하나 없다.
그런데 이 시험 하나가 내 머릿속에 없던 회로를 만들었다.
40대 중반까지 이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도 다 그랬으니까. 다들 그냥 사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합격하고 나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런 거 할 수 있는 인간이었어? 그럼 다른 것도 할 수 있겠네."
이 생각 하나가 이후 내 모든 것을 바꿨다.
위인전에서 읽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
뻔하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몸으로 겪어보니까 알았다.
이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공식은 반복할 수 있다.
합격이 내게 가르쳐준 건 회사 생활이 아니었다.
"이 공식이 작동한다"는 것, 그리고 "나한테도 작동한다"는 것!
그걸 40대에 처음 알았다.
늦지 않았다.
공식을 알았으니까.
지금 나는 그 공식을 다른 목표에 계속 적용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