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와 런던여행 1

출발합니다, 런던으로!

by YongE

28살 겨울, 초중고 동창 17년 지기 친구와 처음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다. 영국 런던으로.

직장인인 친구는 연차를 몰아 써서 겨우 일주일의 시간을 냈고 우리는 저녁 7시 반에 집에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여행 준비


본격적인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사다난했던 준비 과정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둘 다 MBTI 극 P 인간들이었다.

그러니까, 준비라는 걸 하자고 앉아서 대부분 놀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 전에 제대로 정한 건, 비행기 편과 숙소, 윈터 원더랜드와 스냅사진, 그리고 대영 박물관 투어의 예약뿐이었다. 세세한 계획은 우리의 머리엔 없었다. 여행자 보험도 전날 밤에 겨우 겨우 들었을 정도였으니.


짐을 쌀 때도 이런 내 성격은 백분 발휘 되었는데 나는 짐 목록도 만들지 않고 (극 J 아빠는 절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쌌다.

그런데도 다행히 안 챙겨간 건 없었다. 이럴 수 있구나.

이 경험을 통해 아마 나는 앞으로도 목록을 만들지 않을 것 같다.

겨울 옷을 챙겨야 해서 그런지 몇 벌 싸지도 않았는데 캐리어가 꽉 차서 욕심을 버리고 꼭 입고 싶은 옷으로만 챙겼다.

그밖에 아침 식사용 햇반, 돼지코, 각종 충전기들을 캐리어에 넣었다.

그리고 원래 가져가려고 했던 작은 백팩 대신 엄마랑 지난번에 일본에 갈 때 샀던 크로스백을 보조가방으로 선택했다. 아무래도 배낭보다는 크로스백이 더 안전하기도 하고 편리하기도 하니까. 크로스백에 소중한 나의 카메라와 여권, 핸드폰과 지갑, 그리고 헤드셋을 꾹 눌러 담았다. 헤드셋을 가져간 건 많이 후회했다. 쓸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작은 캐리어에 알차게 집을 싸서 집을 나선 것이다. 제일 아끼는 네이비색 떡볶이 코트를 입고.


공항에 도착하니 밤 9시. 수하물을 붙이고 일찍 탑승장으로 향했다.

밤 10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라 카페들은 다 문을 닫았고 문을 연 곳이 딱 한 군데 있어 우리는 거기서 음료를 마시며 보딩시간을 기다렸다.

그런데 12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40분가량 지연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이었다.

탑승장에서


경유


우리는 길고 긴 비행시간을 버텨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내렸다. 이곳에서 경유를 하기 위해.

경유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우리는 바로 탑승장으로 향했다. 향하는 길에 거대한 트리가 있었다.

사실 이런 트리는 한국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곳이 아부다비인 관계로 조금 더 예뻐 보였다.

그리고 나는 분명 로밍을 했는데 아부다비에서 로밍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로밍을 꺼 둬서 그런 거였다.

생각해보면 친구 건 로밍이 돼서 내 것만 안 되는 게 더 이상했다.

아부다비에서


런던 도착


두 번째 런던행 비행기를 타고 또 약 8시간 정도를 간 후에야 우리는 런던에 도착했다.

영국은 정말 멀었다. 20시간 비행은 쉽지 않았다. 다리는 퉁퉁 붓고. 이틀 동안 씻지도 못하고.


그렇게 드디어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제대로 흐린 하늘은 이곳이 영국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지난 번 영국에 왔을 땐 답지 않게 아주 화창했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영국을 만난 것 같았다.

이 흐린 하늘은 우리가 런던을 떠나는 마지막 날에서야 조금 갰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은 것에 그나마 감사해야 하나.


영국의 입국 심사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간단했다

입국심사랄 것도 없이 그냥 여권과 지문(?) 정도만 인식시키더니 그냥 내보내줬다.


수하물을 찾고 영국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사기 위해 현금을 인출하는데,

기계가 자꾸 지폐를 변환할 건지 물어봐서 애를 먹었다.

다행히 변환 없이 뽑으면 파운드화로 나오더라. 변환해서 뽑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찍었는데 우연히 맞은 느낌이라.


공항에서 숙소로


공항에서 나와 지하철 피카딜리 라인을 타러 갔다.

지난 번 영국 여행 떄 숙소가 피카딜리 라인에 있어서 질리도록 탄 노선이었다.

공항에서 피카딜리 라인까지는 꽤 가까웠고 우리는 예전에 내가 영국에 방문했을 때처럼 영국의 교통카드인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안내원 분이 카드결제는 이쪽에서 하라고(?) 하셔서 따라갔더니 그분이 하는 말,

"너희 카드 있어? 무슨 카드야? 그러면 오이스터 카드를 살 필요가 없어."

우리는 트래블 로그 카드와 트래블 월렛 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카드들이 있으면 오이스터 카드를 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그냥 카드를 찍으면 한국처럼 결제가 되는 방식이었다.

(다만 트래블 월렛 카드에 언페이드 상태인 요금들이 많으면 지하철에서 안 찍히기는 하더라.)

우리에게 카드 사용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신 안내원 분 덕분에 꽤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물론 현금 뽑은 수수료가 조금 아까웠지만 비상금 뽑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하철 피카딜리 라인을 방향 때문에 한번 갈아탔는데 복잡한 게 꼭 한국의 1호선 같았다.

심지어 라인 색깔도 남색으로 같았다.

지하철 노선도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려 빨간 이층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모든 역에 서지도 않으면서 역 이름 방송도 없이 꽤 불편했다. (그래도 이 버스를 제외한 이후의 나머지 버스는 모두 안내 방송이 있었다.)

우리는 다행히 숙소 근처에서 잘 내렸지만 곧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이 미치도록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에서 퉁퉁 부은 다리로 그 오르막길을 걷자니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헥헥거리며 겨우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숙소가 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오르막은 차가 있는 사람들이나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펍의 종업원 분이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확인한다며 명부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예약한 친구의 이름이 조금 다르게 적혀 있었다.

심지어 우리가 묵는 기간도 달랐다. 우리는 예약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봐 긴장했는데 다행히 종업원 분이 주인과 통화를 하더니 우리 예약을 확인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는데 올라가는 동안 계단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복도 구조가 꽤 복잡해서 종업원의 뒤만 졸졸 따라가서야 제대로 방에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 숙소에는 펍도 딸려 있는데 앞으로 2주간 펍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펍이 운영할 때의 분위기도 궁금해졌다.

이곳이 원래 축구로 유명한 동네라 극 성수기일 때도 있다는 글을 봤다고 친구가 얘기해 주었다.

한편 종업원 분은 우리가 중국 사람인 줄 아는 것 같았고 한국인이라 말해도 중국어를 쓰냐고 묻는 것을 보니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영어 실력이 조금 더 훌륭했다면 그 분에게 한국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었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영국, 영어의 본고장이라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의 영어가 훌륭하다고까지 이야기해줬다. 몸둘 바를 모르겠네.

꼭대기에 있던 숙소


방에 들어와 캐리어를 내려놓고 무거운 몸을 따뜻한 물에 깨끗하게 씻자 좀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숙소에 전자레인지가 없는 게 아닌가! 아침 식사로 먹으려고 햇반 컵반도 잔뜩 챙겨 왔는데!

그래서 우리는 아까 종업원이 알려준 번호로 숙소 주인에게 연락해서 전자레인지 사용에 대해 물었지만 모든 방에 전자레인지가 있는 건 아니라는 말밖엔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우리가 아니지. 다시 한번 전자레인지를 요청했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반쯤 포기한 우리는 조금 쉰 다음 오후 4시가 넘어서 숙소를 나섰다.


런던에서의 첫 일정, 타워브리지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숙소에서 타워브리지로


겨울의 런던은 4시부터 해가 져서 꽤나 깜깜했고 우리 숙소는 완전 주택가에 있어서 사람도 거의 없었다.

둘이 여행 왔으니 망정이지, 혼자 왔으면 벌써 못 돌아다닐 뻔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골목골목길로 20분을 걸으면서 집집마다 꾸며진 크리스마스 장식에 감탄했다.

영국인들은 정말 크리스마스 장식에 진심이었다.

카메라로 그 광경을 찍고 싶었지만 너무 어두워서 그랬는지 자꾸 busy라는 검은 화면과 함께 흔들리게 나와 포기하고 핸드폰으로 찍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진심인 사람들
세모나게 생긴 지붕들


20분 가량을 걸어 도착한 역은 꽤나 높이 있어서 사람들이 엄청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지하철을 타고 런던브리지 역에 도착해 먼저 야경을 보며 저녁을 먹기 위해 타워브리지가 보이는 런던브리지 근처 파이브 가이즈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스냅 사진을 알아보다가 파이브 가이즈에서 찍은 스냅도 본 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자리부터 맡아두었겠지만 소중한 내 물건들을 위해 주문을 먼저 했다.

코트라도 놓아둘까 했지만 영 불안해서 할 수 없었다.

키오스크에서 카드를 넣는 곳을 못 찾아 한참 헤매다 옆의 외국인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카드를 넣는 것이 아니라 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음료를 담을 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성대고 있으니 또 다른 옆의 외국인이 상세히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먼저 음료의 종류를 고르고 얼음을 담고 음료를 담아야 하는 순서였다.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행복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타워브리지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다.

친구는 소스 조합을 조금 실수하는 바람에 아주 건강한 맛의 버거를 먹었다고 하더라.


햄버거를 먹는데 아주 귀엽게 생긴 외국인 아기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동양인이 신기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아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전 세계의 다양한 인종의 아기들을 보았는데 정말로 전부 다, 너무 귀여웠다!

인종, 국적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은 너무 예뻤다. 우리를 보며 웃는 아기에게 우리도 웃어주었다.


타워브리지에서


맛있게 배를 채운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 타워브리지 야경을 구경했다.

7년 만에 보는 타워브리지는 여전히 예뻤다. 아니, 그 때보다 더 예쁜 것 같기도 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종이로 만든 것 같다고 하더라. 그만큼 깔끔한 외관을 자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나름대로 열심히 찍어주었다. 나는 친구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인생샷을 많이 찍어줄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


구경하던 중간에 혹시 몰라서 카메라를 다시 꺼내보았는데 주변이 조금 밝아져서 그런지 이제 제대로 찍혀서 때깔부터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타워브릿지
타워브릿지에서의 야경


타워브리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타워브리지를 구경하다가 타워브리지 위로 올라갔다.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친구에게 물어보니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가 타워브리지였다고 했다.

그 만큼 타워브릿지는 아름다웠다.

타워브리지가 있는 템즈 강에는 오리가 많았는데 우리 집 근처 강가에 있는 오리들이 생각났다.

타워브릿지 위에서


타워브리지에서 숙소로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 슬슬 숙소로 돌아가면서 친구는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고 싶다면서 카메라를 가져갔다.

친구가 꼭 영상을 찍는 것 같아서 혹시 영상을 찍는 중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자기가 찍고 싶었던 게 사진이 아니라 영상이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괜히 17년지기가 아니라고~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이나 하며 영상을 찍었고 사람이 거의 없던 지하철에서도 열심히 영상에 우리와 영국을 담았다.

내 노란 니트와 지하철의 노란 색감이 참 잘 어울렸다.


숙소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한 우리는 화장실을 찾았지만 네이버 정보에 따르면 영국 지하철역에는 화장실이 없으며 정 급하면 펍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급히 숙소로 향하려 했지만 지하철역에서 출구를 잘못 찾아 버스 타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버스에서 내려 또 한 번의 오르막길 등산을 한 후에 숙소에 겨우 도착했다.

숙소 구조가 조금 복잡해서 방을 찾는데도 약간 헤맸다. 아까 분명 종업원 분과 함께 들어갔었는데도.


그리고 문이 제대로 안 잠긴단 이슈를 잠시 겪었다. (혼자였다면 얼마나 당황했을까?)

분명 잠겨야 하는데 아무리 돌려도 어느 정도 이상 안 돌려지는 거였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문을 무사히 잠글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시행착오 투성이었던 런던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P.S 첫날밤부터 숙소 근처에서 계속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창밖을 봐도 아무 일도 없어서 좀 무서웠다.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 숙소 근처에서는 밤마다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그 소리의 정체는 모른다.

그 소리는 과연 무슨 소리였을까?


그리고 안타깝게도 시행착오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여행의 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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