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부활
어두운 새벽. 휠체어에 앉아 플라스틱 소변통에 몸을 의지한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를 헤치며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허벅지에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살아있다는 증거일까? 숨은 쉬고 있지만 이게 정말 살아있는 걸까? 무기력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 불행은 찾아왔다. 고질적으로 아픈 무릎이 이유 없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무릎이 부으면 아픈 부위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하중이 발목에 가해지고, 그러다 보면 다른 부위까지 문제가 생긴다. 통증이 발목까지 내려갔을 때 멈추어 섰어야만 했다. 미련하게 조금만 버티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고, 회복이 더디어진 나이는 잊은 채, 바퀴 달린 의자에 몸을 싣고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이번에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부어올랐다. 괜찮겠지 했는데 소파에서 일어나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반려인의 부축을 받아 겨우 2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듯, 그 후로 열흘 넘게 1층에 내려갈 수 없었다. 병명은 피로 골절. 양쪽 다리가 다 아픈 상태라 휠체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픈 곳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침대에서 휠체어로 그리고 휠체어에서 침대로 몸뚱이를 옮기는 정도였다. 외출을 한다거나 부엌이 있는 1층에 가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상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사실 일상이 무너졌던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오래 교제하던 여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은 일상이 등 뒤에서 무너져 내리는 듯한 일이었고, 나는 상황에 적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일상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었고, 신체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생각과 덩치는 50대인데, 행동 능력은 걸음마를 배우는 한 살배기 아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일상이 사라지자 사소한 것들이 그리워졌다. 혼자 서서 걷는 것은 호사였고, 아주 기본적인 화장실을 가는 일, 서서 양치질을 하는 일,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일,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일, 우리 집 냥이들과 놀아주는 일 등은 상상만으로도 사치스러울 만큼 간절했다. 이처럼 사소한 일들, 전혀 생각지 않고 그저 주어지는 특권처럼 누렸던 일들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무릎을 굽혀 양말을 신을 수 있는 것이나, 침대에 누워 엄지발가락으로 만세를 아프지 않고 부를 수 있는 것 등은 너무도 하찮지만 소중한 일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꼬박 보름을 고생한 끝에 내가 얻은 작은 행복은 샤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몸이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주인이 떠난 욕조는 가뭄을 만난 논바닥처럼 말라 있었다. 내 마음과도 같은 상태였다. 욕조에 보조 의자를 놓고 다리를 뻗은 채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길이 쏟아지자 온몸의 세포가 다시 살아났다. 몇 년간의 가뭄을 지나 내리는 단비처럼, 내 몸과 마음이 격렬하게 반응을 했다. 아! 아직 살아있구나. 매일 아침 루틴처럼 하던 샤워가 이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일일 줄이야.
불행은 질문하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와, 아무 이유 없이 일상을 무너뜨린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하고 방비를 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코 앞에 나타나는 불청객을 막아낼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다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내가 누리며 살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잊지 말아야겠다. 2층에서 내 발로 1층으로 내려오는데 딱 16일이 걸렸다. 단 몇 초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예측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처럼 치열하고 긴박한 마음으로 마주해야 한다.
내가 숨 쉬고, 일어서고, 걷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은혜이자 기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