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기
나름 금슬이 좋은 잉꼬부부라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고 날마다 쪽쪽 빨며 애정표현을 하는 닭살 커플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삶을 살아가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상관없이 서로에게 충실하게 옆에 있어주는 사이다. 사랑한다는 미사여구나 특별한 이벤트를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익숙함 속에 저절로 만들어지는 편안한 사랑을 하며 살고 있다.
이 익숙함이라는 것은 어느새 피부에 젖어들어 혈관을 타고 작은 신경 세포까지 퍼져 나의 일부-아니 거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반려인에 대한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고 사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내가 숨 쉬며 살아가는 자체가 곧 함께 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 속에 내가 살아간다.
붙어 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떨어져 있으면 사무치게 그리운 것 또한 이 익숙함이다. 어쩌다 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을 떨어져 살게 되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함께 있을 때도 주중에는 취미가 달라 밥 먹을 때만 모였다가 잠을 잘 때까지 헤쳐 모여를 하며 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좀 달랐다.
반려인이 곁에 없으면 가장 먼저 불편해지는 것이 삼시 세끼다. 주중 아침과 점심은 회사에서 대충 때운다 쳐도 저녁이 문제다. 물론 배달 음식도 있고 (미국은 배달 가격이 음식값하고 맞먹지만), 나가서 먹으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화려하게 먹을 수 있지만, 궁상스럽게 혼밥 하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는 싫었다. 그러니 결국 집에서 음식을 스스로 해 먹는 수밖에 없었다. 1식 1찬이지만 반려인과 함께 먹을 때보다 더 맛있게 그리고 더 멋있게 먹으려 노력했다. 간혹 친구 찬스나 교회 어른 찬스로 외식을 할 수 있을 때면 너무도 감사했다.
다음은 우리 집에 기거하는 냥이들 관리였다. 졸지에 부 집사에서 집사로 승격되며 할 일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날마다 아이들 리터 박스 청소와 식기 청소, 물 갈아주기와 털 빗어주기, 사냥놀이 해주기까지 해줘야 했다. 녀석들에게 이렇게 많은 손길과 수고가 들어가고 있었나 새삼 놀랐다. 녀석들은 이런 노력을 알기나 하는지 자기들이 불편하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냐옹거리며 불만을 토로한다. '냥원' 창구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다.
그뿐만 아니다. 집 청소며 빨래며 (특히 빨래 개는 일은 정말 싫다), 그간 반려인이 알아서 해주어 자동으로 해결되던 집안일들이 전부 내 몫이 되었다. 물론 총각 시절처럼 그냥 포기하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나이 먹어서까지 그렇게 방탕한 모습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부지런히 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집안일이라는 것이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눈에 계속 보이고, 끝없이 늘어나는 요술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문제는 일이 마무리될 때 시계를 보면 저녁 여덟 시라는 사실이었다. 아, 대체 이 긴긴밤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그래도 요즘은 책도 있고, 인터넷이나 넷플릭스가 있어서 시간을 때울 수라도 있지. 정말 이런 문명의 혜택이 없었던 시절에는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살았다는 말에 극히 공감을 할 정도다. 그 시간을 흘려보내려 일찍 잠을 자보려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세 깨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새벽형 인간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 모든 불안감과 불편함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안정감의 실종이었다. 반려인이 옆에 있다고 해도 특별한 일이 매일 생기는 것도 아닌데. 일단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제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오는 안정감의 결여. 그 부재가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 나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한 가지 안도할 수 있었던 점은 이 안정감의 결여는 시한부적인 결여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독거노인 생활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오늘 하루만 버티면 드디어 탄자니아로 선교 여행을 떠나며 반려인과 바통을 터치하게 된다. 기뻐야 하는데 하늘은 내 마음도 몰라주고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비를 내리고 있었다. 냥이들을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출근하려는데 반려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응? 왜?"
"비도 많이 온다는데 왜 문 열어놓고 출근해?"
"애들을 위해서야. 나도 나름 생각이 있어 한 행동이야."
"생각하지 마. 그냥 내 말만 들어. 지금 당장 들어가서 문 닫고 출근해."
아마 안정감의 실종은 어쩌면 이런 자극과 잔소리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탄자니아 여행: 2025년 11월 15일에서 11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