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 (The Beginning)

죽으면 죽으리라-여행의 시작

by 꿈 공작소

탄자니아 선교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정말 탄자니아를 가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출발하기 두 주 전, 탄자니아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야당 대통령 후보들의 자격이 박탈된 상태에서 탄자니아 혁명당(CCM) 소속 하산 대통령이 단독 출마해 97.66%의 투표율로 당선되었다. 이에 최대 도시 다르에스살람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선거 무효화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과 군의 과잉 진압으로 500-700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1월 2일을 기해 사태를 심각하게 본 미국도 자국민에게 특별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rcv.YNA.20251101.PAF20251101138401009_P1.jpg?type=w1 하산 대통령 아줌마

과연 갈 수 있을까? 기도로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에서도 불안감은 존재했다. 가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를 놓고 마음이 계속 흔들렸다. 그런 고민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는 에스더 4장 16절에 나오는 구절로 오직 하나님만 믿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결단의 고백이다. 왕의 허락 없이 자기 민족을 위해 말을 하러 나섰다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믿음의 결단이다.


그래 가서 문제가 있어 죽으면 순교요. 아무 문제가 없이 잘 다녀오면 은혜다. 다행히 동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해, 우리의 제한된 머리로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출발 전날, 선교사님이 보내신 마지막 메시지에는 탄자니아가 진정 국면으로 돌아섰고, 인터넷도 복구되는 등 정상화되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또 12월 초에 대규모 시위가 계획되어 있으니 태풍의 눈처럼 조용한 지금이 다녀가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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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 않은 11월의 비를 맞으며 여섯 명의 일꾼들이 엘에이 공항에 모였다. 탄자니아까지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두 번 타야 한다. 먼저 이스탄불까지 13시간을 날아가서 여섯 시간을 기다린 후, 다시 여덟 시간을 비행기를 타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긴 여행이다. 징하게 멀고 긴 여정이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 생각에 지겹다는 생각보다 기쁘다는 생각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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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해 좌석표를 확인했더니 비행기 뒤쪽은 거의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하면 눕코노미로 갈 수 있겠다는 꿈에 부풀어 자리를 뒤쪽으로 변경했다. 그런데... 공항에 와서 자리를 배정받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준비성 없는 사람들. 이 결정 하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나를 덮쳤다. 나만 빈자리 없이 꽉 채워 창가에 갇혀 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원래 자리에 앉았다면 중간 자리라도 비었을 텐데, 꼼수를 부리다 큰코다쳤다. 뭐든 그냥 계획대로 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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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한 뒤로부터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이제 즐기기만 하면 된다. 성경을 읽고, 책을 읽고, 기내식도 먹고, Quiet Place: Day One, Gladiator II, 그리고 Casablanca까지 영화 세 편을 봤다. 그런데도 도착까지 시간이 아직 많이 남는다... 게다가 이상하게 왜 잠은 오지 않는지. 성령에 취해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는 상태였나 보다. 뜬 눈으로 별밤을 누리고 아침에 동이 터오는 것까지 그 자리에 앉아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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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타고 가는 비행기가 A380 기종이라 창가 좌석은 동체를 따라 둥글게 설계가 되어 있어 다른 자리보다 공간이 더 있다. 허리는 좀 아파도 어깨는 편히 쉴 수 있어 좋았다. 문제는 옆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와 엄마가 앉았는데, 어떻게 13시간 동안 화장실에 한 번을 가지 않지?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화장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중간에 앉은 엄마가 너무 숙면을 하고 있어 깨우기도 미안했다. 아이에게 손짓 발짓을 해가며 신호를 보냈더니, 아이가 용케 알아듣고 엄마를 깨워주어 대참사는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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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 도착하기 얼마 전, 아침 기내식이 나왔다. 피곤하고 졸린데도 욱여넣으니 또 들어가기는 하더라. 그렇게 장장 13시간의 비행 후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긴 탄자니아 선교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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