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여행: 마사이족 교회

여호와 삼마-그곳에 계신 하나님

by 꿈 공작소

점심을 먹고 나오니 우리를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으로 데려다줄 운전사 필립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요리사라 소개한 또 다른 아저씨가 옆에 타고 있었다. 오늘 오후 일정은 응고롱고로 자연보전 지역으로 들어가 등록을 하고 입장료를 낸 후, 응고롱고로 지역에 살고 있는 마사이족 교회를 방문한 다음, 캠핑을 하는 것으로 잡혀 있었다. 마사이 부족 용사들이 문을 지키는 고급 호텔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야생의 텐트 취침이 사파리 투어에 더 적합하다 생각해 캠핑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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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해 한 시간가량을 달려서야 응고롱고로에 도착할 수 있다. 갑자기 시차가 찾아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린아이처럼 잠에 곯아떨어졌다. 도로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지 엄마가 흔들어주는 요람처럼 차가 적당히 흔들려 아주 숙면을 했다. 코를 골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나니 응고롱고로 자연보전 지역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입장료가 무려 $71.80이나 된다. 탄자니아 카라투 지역 노동자 평균 소득이 한 달 $300.00 정도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것이다. 차량이랑 인원 등록을 하는 동안 차에서 내려 몸을 풀었다. 곳곳에 야생 개코원숭이의 공격에 주의하라는 경고문이 서있길래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나를 노리는 야생 개코원숭이는 안타깝게 (?)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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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속을 마치고 다시 출발. 정문을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망대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렝게티와도 맞닿아 있는 응고롱고로는 그 면적이 8,100Km2 (서울 면적의 13.3배)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공원이다. 사바나, 숲, 계곡, 칼데라 지형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곳으로 물이 있는 칼데라 지역에 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분화구는 500미터 정도 되는 가장자리로 둘러싸여 있는데 경사가 심해 기린은 걸어서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럼 기린은 볼 수 없겠네? 기린 없는 아프리카를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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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족 교회로 가기 전, 캠핑장에 잠시 들렀다. 그곳에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요리사 아저씨를 내려주었다. 음식 재료를 구입하고 이곳에서 우리의 세끼 (저녁, 아침 그리고 점심 도시락까지)를 책임져야 하는 아저씨는 1박 2일 동안 열심히 일해서 $20.00정도를 번다고 한다. 속으로 애걔. 꼴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자리가 없어 놀고 있는 요리사가 넘쳐날 정도라고 한다.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후기를 보면 여러 스태프를 거느린 화려한 황제 투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게 번듯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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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를 타고 고원 평지를 달렸다. 황량한 곳에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움막들을 지나 비뚤어진 십자가가 지붕 위에 서있는 교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들려오는 찬양 소리. 뭉클했다.


"이 오지에도 아버지가 계셨군요."


여호와 삼마 (Jehovah-shammah)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에스겔 48장 35절에 나오는 여호와를 설명하는 다른 10개의 이름 중 하나로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라는 뜻이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는 위로와 회복이 담긴 언약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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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주민들과 짧은 예배를 드렸다. 찬양이 설교보다 훨씬 길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울려 퍼지는 절규 같은 찬양들이었다. 내용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곡조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찬양이 왜 이리도 구슬프게 들릴까? 찬양 후 설교가 이어졌다. 목사님이 한국어로 설교를 하시면 선교사님이 탄자니아어로 통역을 하시고, 또 마사이족 목사님이 마사이어로 통역을 하셨다. 근데 하필이면 이 시간에 시차의 피로가 덮쳐올 것은 또 뭐람... 맨 앞자리에 교인들을 마주하고 앉아 졸기 시작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짧은 설교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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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설교가 끝이 나고 우리가 준비해 간 선물을 나누어 주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교회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엄마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기를 수줍어하는 아주 작은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I 성향의 이성이 만류를 했지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Come with me."


그 아이는 내 손을 기다렸다는 듯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곤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힘을 주어 꼭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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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서니 아이들이 이미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 마당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이라고는 바람개비와 막대사탕뿐인데, 그것을 받는다는 기대에 아이들이 들떠 있었다. 보통 이렇게 들뜬 아이들은 들떠 소란해지기 마련인데, 이 아이들은 자기의 순서가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조용히 기다리기만 했다. 심지어 손을 내민다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도 하나 없었다. 문제는 동네 아이들이 너무 많이 모여 우리가 준비해 간 물품이 모든 아이들에게 돌아가기 전에 동이 났다는 것이다. 초롱초롱 보석 같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보며 자기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실망한 표정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이게 뭐라고... 더 준비할 수 있었는데. 미안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이 한 줄기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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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족은 케냐와 탄자니아 접경 지역에 넓게 분포해 살고 있었다. 1900년대 초 영국과 식민지 전쟁을 벌이며 좁은 지역으로 쫓겨났고, 그들이 정착한 땅이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이 되면서 관광 자원 보호를 명목으로 더 좁은 지역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들은 유목 민족으로 살아가기에 관광 자원인 야생동물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그들을 강제 이주시키려 하는데, 정부가 제안한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현재도 그들은 갖은 핍박과 수모를 당하며 살고 있지만, 그들만의 전통을 주장하며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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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을수록 아이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시간들이 마음을 점점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바람개비를 하나씩 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천국이 담겨 있었다.


나는 기도했다. 그들의 결핍이 하나님의 임재를 찾는 갈망의 씨앗이 되기를. 그리고 그 아이들의 길 위에 말씀이 등이 되고 빛이 되기를.


그리고 응고롱고로의 거대한 분화구보다 더 깊은 곳, 그 작은 교회와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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