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카라투 지역에 지어질 기숙사가 딸린 중*고등학교 부지까지 둘러보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오후에 있을 일정 전 여유가 있어 선교사님이 세워 놓은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주어졌다.
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땅에 정착해 살며 진짜 맨손으로 일구어 낸 학교였다. 2년 과정의 유치원과 7년 과정의 초등학교까지 운영하는 이 학교는 교실, 강당, 예배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고, 아주 그럴싸하게 잘 지어져 있다.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이 되며 선생님들은 Dar es Salaam의 4년제 대학을 나온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쿨버스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학교에서 멀리 사는 아이들도 아침저녁으로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할 수 있다.
학비는 한 달에 $20.00. 탄자니아 카라투에 사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에 비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물론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학비를 면제해 주기도 한다. 한 학년당 정원은 선착순 60명. 하지만 등록 시기를 놓치거나 뒤늦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받아주다 보니, 한 학년당 65명 선이 된다. 마을의 가장 훌륭한 교육기관으로 소문이 나 있어 부모들이 아이들을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한다. 또 시장을 포함 의사, 변호사 등 동네 유지 자녀들이 대부분 이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단한 인맥도 형성이 된다.
학교 건물들을 돌아보고 교무실에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이제 이 학교는 거의 자리를 잡아서 우리는 학교 운영의 90%를 현지인들에게 이양했고요. 조만간에 중고등학교 사역을 위해 이곳을 떠날 겁니다.”
사모님이 행정적인 면을 조금 도와주고 있을 뿐, 교장 선생님을 포함 모든 스태프가 현지인으로 채워져 있고, 재정마저도 자체적으로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황무지에 이렇게 번듯한 학교를 세워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다는 말씀이 그 순간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많은 선교지에서 사역의 열매를 둘러싼 이권(?) 문제로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유명한 이용규 선교사님의 책에 나온 온전한 내려놓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교사님의 아들이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어 품에 껴안고 계산대까지 갔는데, 계산하는 순간에도 장난감을 놓지 않더라는 것이다. 계산한 다음에 다시 가져가도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장난감을 품은 아이가 계산대 위에 올라가 계산을 마친 후에야 자기가 그토록 원하던 장난감을 가질 수 있었다는 일화다.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더 악착같이 모으고, 더 꽉 쥐라고 부추긴다. 만약 그것을 놓치면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처럼 겁을 준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삶을 통해 온전히 일하시기 위해서는 내 자아를, 또 내가 아끼며 꼭 쥐고 있는 마지막 보루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을 꼭 쥐고 있으면 자아가 자라나 내 삶의 주인인 척 마음속에 널을 뛰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이 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문제는 이 자아가 너무 자라나 결국 자기애(愛)가 되고, 더 커지면 자기의(義)로 변질된다. 자기의는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해 살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 살게 만든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보다 정죄하고 판단하기에 앞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순간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척을 하고 살아왔는가? 항상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나 자신을 부인할 수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어떤 상황이 다가오면 너무도 편리하게 십자가에서 슬그머니 내려와 내 소견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그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 너무나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물론 선교사님도 역시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기까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심지어 그것이 그의 목숨이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처럼 보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한 일을 행하실 주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하나님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려운 내려놓음. 내 안의 예수 그 분만 생각할 때, 하늘의 그 손이 일하시네 (내려놓음 찬양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