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이 밝았다. 어제저녁, 모기와의 전쟁을 치른 탓에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선교지에서는 누워 있고 싶다고 마냥 누워있을 처지가 되지 못한다. 굉장히 느릿하게 일어나 간단하게 조식을 하고 오늘 하루를 준비했다.
식사 후에는 내일 열릴 치유 세미나 식사용으로 쓰일 소가 매여 있다는 정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길냥이 두 마리를 만났는데, 탄자니아에서는 고양이를 집에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얼룩말이 길가에서 풀을 뜯고, 하이에나가 밤길을 활보하는 탄자니아에서 굳이 반려묘를 키울 이유는 없어 보였다. 원한다면 가까운 국립공원에 가면 훨씬 크고 위엄 있는 사자도 볼 수 있는 나라다.
우리가 만난 소는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오늘 오후면 생을 마감하게 될 텐데, 아무 걱정도 없는 표정으로 풀을 뜯고 있었다. 치유 세미나에 참석할 300여 명의 지역 크리스천 리더들의 만찬을 위해 죽게 된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한 치 앞에의 일도 모른 채 살아가는 소. 그 소를 바라보다 문득 우리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1초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면서, 우리는 지금 손에 쥔 것들을 붙들고 허탄한 자랑을 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야고보서 4장 14절은 우리 삶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세상적인 정욕과 다툼을 버리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서로 비방하지 말고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자기 자랑을 내려놓고 주의 뜻을 따라 미래를 계획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머지않아 생명이 사라질 소 앞에 서있으니, 그 말씀이 마음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소를 잡는 장면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나 다음 장소로 이동해갔다. 다음 장소는 기숙사가 딸린 크리스천 중고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구입한 부지였다. 선교사님의 동생이 일찍 사고로 소천했고, 제수씨가 그가 받은 생명보험금 전액을 헌금해 이 땅을 살 수 있었다고 했다. 안개처럼 이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삶은 끝이 났지만, 학교가 완성되면 그가 남긴 유산은 영원히 오랫동안 빛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속히 학교 건물이 완공되기를 기도하고, 아보카도 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 우리가 다녀갔다는 작은 흔적이기도 했고, 앞으로 이 넓은 부지에 많은 아보카도 나무가 자라나 재정적으로 학교를 돕고, 또 그 재정으로 탄자니아의 미래를 이끌어 갈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도했다.
이어 베이스캠프 학교처럼 선교사님이 부지를 돌아 심어 놓은 나무숲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판 우물도 돌아보았다. 이 지역에는 지하수는 있긴 하지만 고도가 높은 곳이라 땅을 깊게 파야 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탄자니아 현지 사정상 지하수가 있는 곳까지 땅을 팔 수 없다고 한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탄자니아에 온 모든 선교사님들이 한결같이 사역을 우물 파는 일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 소와 염소 떼를 몰고 가는 어린 목동들을 만났다. 여자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남자아이들만 보였다. 이 아이들에게 가축들은 아주 중요한데, 이들이 장가갈 때 지참금으로 가져가야 하는 그들의 미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가축 떼를 다루고 있었다. 그래 안개 같은 우리 인생,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훌륭한 남자가 되길 기도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