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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의 종말

by 김현석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은 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혼자만의 세계를 마음껏 유영하며 감정이 정화되는 시간이었던 혼술의 낭만과 이별했다.

가장 큰 이유는 몇 년 전 의사의 절주권고에는 술이 주는 정서적 효용성을 내세우며 무시모드의 태세였는데 최근의 두 번째 경고성권고에는 나의 생물학적 나이도 고려해 태세전환하기로 마음을 살짝 고쳐먹고 몇 달째 실천 중이다.

물론 아직까진 금주를 선언한 것은 아니라 직원들과의 회식이나 가족여행 시 어쩌다 술과 어울리는 음식이 나오면 반주를 하는 정도의 사회적 관계의 유연함을 위한 음주의 끈은 놓지 않고 있는 중이다.
음주의 빈도가 두세 달의 한 번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술을 정말배척하는 수준엔 이르지 못한 형국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동안 소비했던 음주의 시간들은 좋은 사람들과의 유희를 위한 시간이 7할 정도 되고 그지 같은 상황으로 인한 감정의 쓰레기들을 털어내려는 한 방편으로 3할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든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좋은 게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게 다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술에 대입해 봐도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사실 나에겐 알코올분해효소가 적은 편이라서 술체질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시점부터 술자리는 인간관계의 친목을 위한 장이며, 삶의 유희를 누릴 수 있고, 현존하는 불안과 시름이 끼어들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 속에서 주저함이 없이 그 시간들을 소비한 것 같다.
다른 한 편으론 상황에 따라서 외향성과 내향성을 넘나드는 특성이 젊은 시절엔 모임의 주도성이나 분위기메이커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 발동되어 페르소나의 한 방편으로도 술에 거부감이 없었던 기억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음주에 대한 자기 객관화의 요소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는 풍류를 즐기면서 활기차게 장수하는 사람이다.
사회에 없으면 안 될 정도의 사람은 아닐지라도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회에도 기여하는 인생을 살면서 노년까지 풍류와 위트를 즐기는 사람은 축복받은 인생이라 생각한다.

혼술의 종말은 고할지라도 아직까지 완전금주는 왠지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남은 생을 항상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면 건조하고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에 만난 의사가 선생님 드디어 금주할 시점에 도래했다고 하면 순응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는 하다.

"병은 쾌락의 이자다."라고 누군가 말을 했다는데 나는 쾌락만을 추구했다기보다는 우악스러운 세상에서 풍파에 침식되면서도 추구하는 인생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며 인생행로를 갈려다 보니 코티졸호르몬의 작용이 많았던 것도 한 요소인 것 같다.

젊었을 때의 전성기시절은 지나갔어도 인생의 황혼기에도 나만의 풍류를 즐기며 위트 있게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는 노인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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