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은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의 과오로 타인에게 민폐가 되거나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매사에 신경 쓰며 언행이 일치되도록 살아가려는 정신소유자와 또 다른 부류는 자신의 커다란 과실로 인해 타인이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되는 상황이 생겨도 상대방을 문제의 원인제공자인양 몰고 가려는 파렴치한들이다.
전자의 사람들은 인격적인 배려심의 발로도 있지만 자신의 과실로 인한 수치심을 갖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의 생활패턴이 체화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족속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손실회피가 최우선순위다 보니 인격적인 표상이나 수치심 같은 감정 따윈 일고의 가치도 없는 듯 보인다.
동종의 호모사피엔스이지만 행동양태는 이처럼 상반된 두 부류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이 세상에 공존하는 것이 인간생태계의 실존인 것 같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유태인학살주범의 재판을 지켜본 후에 일갈한 '악의 평범성'의 논제에서 알 수 있듯이 거악을 주도했던 인물마저도 평범한 옆집아저씨 같은 용모에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자신은 국가정책을 충실히 수행한 관료일 뿐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처럼 삶을 사유하지 않으면 자신이 타인에게는 괴물로 비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거나 철면피 같은 가면 속에 숨어서 인류애가 고갈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경제학논리로 많이 거론되는 그레셤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는 논제처럼 일상에서도 갈수록 사유하는 인간의 품격 있는 행실을 보는 것은 점점 힘들어지고 적반하장의 준동을 보는 것은 흔하게 마주하게 된다.
친밀했던 사람부터 이해관계로 엮인 사람까지 어느 순간 돌변한 민낯을 보일 때면 나는 적반하장의 평범성을 실감한다.
영화 속주인공이 나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주변인이 나중에 좀비라는 사실에 기괴함을 느끼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도 세상살이가 참 무섭고 재미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가끔씩 매체를 통해 타인을 위한 미담의 주인공들을 보노라면 이 세상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거 같고 그림자로 온통 뒤덮이는 세상을 저지하려는 수많은 지원군들에게서 희망의 빛을 보지만 '적반하장의 평범성'으로 세상이 물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순간 온 세상이 잿빛처럼 보이는 것 같다.
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