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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주 Oct 18. 2021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것은 국가였다.

[그림] 메두사의 뗏목, #국가의의무

1816년, 프랑스의 범선인 ‘메두사호’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그림은 실제 사건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인데요, 당시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 사실적인 참혹함에 화가 났습니다. 사실, 세월호 사건이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요. 실제 사건 역시 화가나기 그지 없는 사건입니다. ‘메두사 호’가 난파되자 무능력하고 비열한 선장과 높은 장교들은 선원들과 승객을 버립니다. 선장은 그것도 모자라 구명정을 타고 탈출하면서 밧줄로 연결되어 있던 뗏못들을 칼로 잘라버렸다고 전해집니다. 국가가 관리하던 군함의 선장이었지만, 위기 앞에 수많은 시민의 목숨은 하찮은 것이었나 봅니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이후 재판에서 선장이 받은 형기가 고작 3년이었다고 합니다.     

데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1819)’ Théodore Géricault, Le radeau de la Méduse(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저도 재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세 살 무렵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어린시절에 집에 불이 났었다고 합니다. 동지 팥죽을 쑤어먹었으니, 추웠던 날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사위가 술을 먹고 난방기구를 발로 차 흘러나오는 석유에 불을 얹었고,  금세 불길이 타올랐고, 아빠는 아래 가게 전화를 빌려 119에 신고를 했지만 도착한 소방차에서는 엄동설한에 소방 호스가 얼어붙어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른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이 전소하고 난 후였고 말입니다. 아직도 아빠는 40년이 다 된 얼어붙은 소방 호스를 이야기하면서 나랏놈들 욕을 내뱉으시죠.   

  


2014년 4월 16일, 출근길 지나던 어느 가게 안 텔레비전의 자막이 긴급했습니다.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수학여행 중인 안산 단원고 학생 338명 전원 구조”     

대통령이 해외순방 때 입은 옷의 색깔조차 빨간 자막 위에 띄우는 속보 경쟁의 종편이 넘쳐나고 있었던터라 속보 같지도 않았고 여객선 사고는 날 수도 있으나, 우리나라 재난방재 시스템은 당연히 전원 구조할 능력이 있으니 한 점 의심도 없는 속보였습니다.     

그날 저녁, 전원 구조를 의심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영혼이 무너져 내렸죠. 구조되어야 할 사람들이 배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구조작업이라는 것도 실체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년전 아프리카 세네갈에서처럼 시민들을 구하지 않았고, 40년 전 소방 호스처럼 얼어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당사자를 넘어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새겨집니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입을 모았고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상황이 변해갔습니다. 유가족을 비난하는 정치인들이 늘어갔고, 일부 정치인들은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죠.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처럼 몰아가고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일 수도 있는데 국가를 상대로 너무 과하게 요구한다는 주장도 흘러 나왔습니다.     


그날처럼, 사회는 유가족에게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 그날 그 배를 탄 너희들의 잘못이라고.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도 그랬구요. 그게 왜 대통령의 잘못이냐고. 오늘도 언급하기 힘겨운 그들의 잔인한 이야기는 여러곳에서 이어집니다. ‘위안부’가 지겹다고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일본 극우 세력을 보는 기분이 들었죠.     

.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재난 피해자들은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40년 전 불타는 집을 지켜만 봐야 했던 책임은 소방 호스가 얼어붙은 날씨 탓이 아니라, 하필 사위가 개차반인 그런 집에 세 들었던 아빠의 잘못이 아닙니다. 소방 호스가 얼어붙도록 방치한 소방서가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200년 전의 이름도 거창한 ‘메두사호’에 승선했던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선장과 부패하고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프랑스의 잘못이었습니다.     

혹여 닥칠지 모를 다음 재난에서 내가, 혹은 우리 아이들이 당연히 살아야 하고, 죄를 지은 이는 법에 따라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고,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는 치유되고 배상받아야 한다고,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   

       

 [곁들여보기]

 - 세계인권선언

제3조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킬 권리, 자유를 누릴 권리,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

제8조 모든 사람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 법원에 의해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 대한민국 헌법 10조 : 1.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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