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종료가 곧 평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림] 게테콜비츠(전쟁, 평화)

by 효주

전쟁과 가난, 노동을 잘 그려낸 화가가 있습니다. 2차 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에서 태어나 고스란히 전쟁의 상흔을 모두 보고 성장한 케테 콜비츠(kathe schmidt kollwitz 1867-1945)입니다. 19세기 말 중산계급으로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노동자들과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민중의 모습을 판화로 표현했습니다.

포스터로 제작된 'The Survivors'(1923)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도시에서 아이들을 감싸 안은 여성의 모습, 그리고 부상당한듯한 어른들의 모습, 겁먹은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둡고 우울한 판화 작품들이죠. 전쟁은 이렇듯 그 당시를 살아냈던 모든 이들에게 상흔으로 남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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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흔은 생각보다 치유되기 힘듭니다. 부서진 건물과 도로가 복구된다고 전쟁의 상흔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요. 1차 세계대전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데, 7년간의 전쟁이었지만 그 상흔은 70년 이상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계대전 당시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국경이 나누어진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도 종족 갈등과 내전이 진행 중이며 영국에 할양되었던 홍콩은 반환 이후 현재까지 민주화 투쟁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미얀마도 그런 국가들 중에 하나죠. 미얀마 접경 지역 로힝야족 난민촌은 말 그대로 인종 청소가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현재 아웅산 수치는 이 비극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노벨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 정도로 말이죠. 그게 역사적으로 들여다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버마(지금의 미얀마) 독립군을 탄압하기 위해 로힝야족을 용병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로힝야와 일부 소수민족은 버마 독립군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탄압하죠 이때 수치의 아버지이자 버마 독립군의 대장이 아웅산 장군이었기 때문에 로힝야 족에 대한 감정이 좋을 수가 없죠. 그런 이유였을까요? 아웅산 수치는 평화의 상징이었지만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은 묵인하고 있는 상황인데, 민족과 역사적 트라우마 앞에 인권이 멈춰 선 상황인 셈이죠.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습니다. 일제의 식민지 처지에서 의도치 않게 태평양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독립을 맞이했지만 사회는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 사상이 나뉘어지고, 사회는 분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가 제대로 꾸려지기도 전에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 처해지고, 남북 분단이라는 결과 아래 안보는 제1의 가치로 자리잡게 됩니다. 혼란한 사회를 규합하고,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되고 군사 문화는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되는 계기가 된거죠.

대한민국 스포츠는 폭력과 얼차려의 문화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전체주의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 더 엄격한 학교 문화가 한국의 학교 문화이구요. 군대 제복 같은 교복과 짧은 단발, 학교에서 실시된 전쟁 대비 수업이 그 사례라고 볼 수 있죠. 회사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1970, 80년대 제조업 현장은 군대식 기숙사와 아침 조회, 단체 체조 같은 것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처럼 남아 있는 기록이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군사문화가 스며 있었던 것이죠.

안보라는 가치를 바탕에 두고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전쟁을 대비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 종전도 아니고 휴전 상태인 분단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지만, 군사문화라는 것이 제한하는 인간의 권리 상황은 생각보다 넓어집니다. 아이들의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추고, 운동선수의 인권은 합숙소 앞에서 멈춘다고 합니다. 이 전쟁의 상흔이 아직 우리 사회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게 되면, 누군가는 "전쟁을 안 겪어봐서 철없는 소리를 해댄다"며, 당장 전쟁을 일으켜야 할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증오와 낙인찍기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서북청년단을 단체 이름으로 내세워 활동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전쟁의 상흔은 이렇게도 진행 중인데, 치유하지는 못할망정 다시 분열과 대립으로 상처를 파내지는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인간의 존엄이 철저하게 말살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것은 인류의 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의 종료가 곧 평화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죠. 세계대전 이후 인권의 최대한 보장을 위한 '세계인권선언'이 유엔에 의해 채택되고 각국 헌법에 반영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