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나시마냥, 무조건적으로 읽는것이 중요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한 선배들(물론 좋은 대학에 진학한)이 와서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하는가'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해도 좋은 대학을 가야지 성공한다는 원칙에 충실하던 때라, 귀를 쫑긋하고 열심히 들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구체적인 공부 방법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통이야기였습니다.
파이프로 연결된 두개의 물통이 있어. 왼쪽 물통에 물을 붓는 건 너희들이 공부하는 양이야, 그리고 오른쪽 물통은 성적표야.
처음에는 물을 부어도 부어도 오른쪽 물통에 물이 차지 않아. 파이프가 있는 선까지 물을 부어야지 그 때부터 오른쪽 물통에 조금씩 물이 차기 시작하지.
파이프선까지 물을 채우고 나면, 그 때부터는 공부를 하는 만큼 성적이 계속 꾸준히 오르기 시작해. 그러니까 지금 노력하는데 성적이 안나온다고 포기하면 안되는거야.
..
지금 생각해봐도 그 때 이 말을 한 선배언니는 정말 훌륭한 학습자 같습니다. 지금 뭘하고 지내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아마도 뭘 하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거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만..
이 물통 이야기는, 글쓰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왼쪽 물통은 독서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물통은 글쓰기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니면, 왼쪽 통을 글쓰기 통이라고 한다면 오른쪽 통은 좋은 글이생성되는 통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남들보다 더 많이 읽은 것 같은데, 글을 쓰려고 막상 앉으면 무슨 단어부터 적어내려가야할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첫줄만 썼다가 지웠다가를 열여섯번쯤 하다가 좌절하기도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볼 때 독서와 글쓰기는 함께 병행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문장을 어떻게 완성하는지가 어렵다면, 독서를 하다 인상깊은 문장이 있다면 한번 적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워드가 편한 세상이니, 노트북이나 패드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손글씨로 한글자 한글자 꾹꾹 눌러가며 적어보시길 권장드립니다. 그러다보면, 단어 하나하나가 왜 이 문장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작가는 왜 이 단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혹은 나라면 다른 단어로 바꿀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볼 수가 있지요. 거기에 더해 문장의 구조나 길이감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연습이 됩니다.
사실 저는 인상깊은 한문장을 쓰는 것을 말씀드리긴 했지만, 기왕이면 좋은 책이나 좋은 글은 전체를 한 번 다 적어보는 것을 더욱 추천합니다. 물론 아무 글이나 빼껴 적어 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글이어야 하는 것이죠. 좋은 글을 골라 내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대로 많이 읽어보아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자세히 보아야,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글은 많이 보아야 아름다운 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좋은 책을 탁탁 골라 읽어낼 재주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좋은 책이라고 해서 내게 좋은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유명한 책이 좋은 책도 아니구요. 그래서 저는 무조건 많이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문 사설, 광고문구, 공공기관 홍보물까지 우선 그 글의 성격에 맞게 글이 어떻게 흘러가며, 쓰여져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모험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많이 써보아야 좋은 글을 써낼 수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떤 방법으로 해보는 것이 좋을까요?
독서의 방법에는 아주 여러가지가 있다고 우리는 학교 다닐적에 배운 적이 있습니다. 속독, 정독, 심독 어쩌고 저쩌고.
그 어떤 방법이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읽는 것이 좋겠지요. 저는 속독형입니다. 글을 읽을 때 거의 세로 지그재그로 읽어내려가는 편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심독가였습니다.책 한권을 사면 한 페이지 한페이지를 씹어먹을 정도로 꼼꼼히 읽었더랬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아직도 그예전에 읽었던 책의 주인공들 하물며, 더 심하게는 그 책의 재질이나 글자체, 어느 부분에 낙서가 되어 있었고 파지가 있었던 것까지 간혹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심독가들은 법공부가 참 쉽지 않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법서들을 우선 빨리 빨리 읽어서 3회독 4회독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는 수학의정석 집합부분만 새까맣게 만드는 아이처럼 더듬 더듬 진도를 나가고 있으니까요. 우스개말로 친구들이 이미 개론을 넘어 강간에 폭행, 살인까지 나아가고있는데 저 혼자 개론을 파고 있었지요.
파이프 물통 이론은 여기서도 적용이 되네요. 그렇게 더듬더듬 땅굴을 파듯 책을 읽어가던 어느날부터 갑자기 책읽는데 속도가 붙더군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처럼 느림보 독서가도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어치울 수 있는 날이 어느날은 만날 수 있으니까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잠시 언급했지만, 책을 골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이책이 유명하다더라, 혹은 지금 이 책이 가장 잘팔린다더라, 혹은 유명한 아무개가 이번에 책을 냈으니 읽어봐야겠군 하는 생각. 모두 좋습니다.
책을 고르는데 원칙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단 하나, 억지로 읽지는 마세요.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은 세상 재미없을 것 같고 관심도 없는 주제인데 유명하다고 하니, 누군가가 읽었다고 하니 읽는 것은 딱히 추천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건 ‘내가 재미있을만하다고 생각하는’책을 읽는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도서대여점이라는 곳이 있었더랬습니다. 말그대로 책을 빌려주는 곳이었지요. 오백원 정도를 내면 1주일 정도 가져가서 읽고 돌려주는 시스템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 소녀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목이었던 ‘더 깊은 사랑’이라는 소설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울고 짜고했던지. 그리고 작가 이름을 보니 ‘경요’였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중국 소설가 경요의 팬이 되어 그녀가 쓴 책이란 책은 온 동네 책방을 돌아다니며 다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금잔화, 은잔화, 유리꽃 등등 말입니다. 참고로 경요는 한국에서도 방영된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의 작가입니다.
그렇게 작가 중심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꽤 편합니다. 작가에 대한 탐구도 되고, 그 작가의 문체도 익숙해지니까요. 그렇게 도장깨기 하듯, 박경리, 박완서, 이문열 같은 당대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쓸어담듯이 읽어나갔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우선 무슨 글이든 많이 읽으면 좋습니다. 그리고 인상깊은 구절이나 좋은 글은 손글씨로 꾹꾹 담아써 보기를 권합니다. 책을 읽는 방법은 자신이 가장 편한대로 읽으면 됩니다. 단, 재미없고 힘든 책을 고통을 참아가며 읽지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