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을 빙자한 회피성

마스터마인드를 통해 본 시대 속 개인의 유약함

by 한대웅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 마스터 마인드는 비참한 시대 속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명확한 주제의식이 될 법한 이야기 한가운데에, 그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유약한 개인을 배치한다. 주류적 해석처럼 이 영화를 슬로우 시네마의 문법 속에서 남성성의 해체로 읽을 수도 있다. 실제로 무니는 영화내내 여성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며, 미술 작품을 훔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아내의 스타킹을 얼굴에 뒤집어쓴다. 이 장면은 노골적이면서도 웃기다. 그러나 라이카트는 무거운 시대 인식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인물의 비루함과 우스꽝스러움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진중함과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영화가 휘발되는 철학적인 논증에 영화를 묶어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전시위가 반복되는 세상 속 무능력하지만 가부장적인 남자인 무니의 하루 일과는 주변의 가장들을 비웃으면서 시작된다. 그가 능력이 아예없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노력은 하는 거 같다.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그는 박물관 속 미술작품을 훔친다. 그가 실력이 좋아서 성공한 게 아닌 시대가 허술한거다. 자신의 동료들에 배신 속에서 남자는 도망치기 시작한다. 경찰에게 도망치는 남자는 엄마와 아내가 보내주는 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끝내 엄마와 아내가 그를 도우기를 거부하자 그는 돈이 많아 보이는 할머니의 지갑을 훔친다. 그도 결국 허술하기에 도둑질은 금방 들킨다. 남자는 다시 한번 도망친다. 이번에는 급진좌파들의 시위 속에 몸을 숨겨 좌파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좌파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낀 그는 이제 경찰의 따돌림을 피했다 생각하지만, 경찰은 그를 이번에 다르게 쫒기 시작한다.


무니의 여정 속 가장 큰 특징은 그가 스스로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택하는 주체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주체성이라는 단어는 그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에 가깝다. 그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선택의 의지라기보다 회피의 태도이며, 그의 삶은 판단의 연속이 아니라 상황을 피하기 위한 즉각적 반응들의 누적처럼 보인다. 영화 속 카메라도 그의 판단을 괄시하듯 그를 향한 카메라는 그를 따라다니기 보단 관조한다. 영화 중반 신분증을 위조 하는 무니와 그가 묶고 있는 방을 360도로 회전하는데, 널린 선택지 속에서도 가장 속물적인 선택을 하는 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그는 어떤 가치에 공감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미술 작품을 훔치는 일도, 급진 좌파 시위대 속으로 몸을 숨기는 일도 모두 명확한 목적이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직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임기응변이며, 무능력한 개인이 생존을 위해 허세와 위장을 반복해 온 기록에 가깝다. 무니는 늘 무엇이 옳은가를 묻기보다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가를 계산한다. 이 회피적 태도는 그의 무능력과 결합되며 더욱 치명적으로 작동한다.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욕망은 있으나, 그 욕망을 실질적인 노력이나 책임으로 전환할 능력은 없다. 그 결과 우리의 주인공은 시대가 제공하는 가장 허술한 틈새들 속으로 흘러들어가며 자신을 감춘다. 그러나 그가 몸을 숨긴 집단들조차 결국 그를 보호하지는 못한다. 결국 자신 때문에, 시대가 만들어낸 가장 급진적이고도 부조리한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이 비참함을 전적으로 시대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인 세계아니겠는가?


*이 영화를 보게 해준 서울아트하우스영화제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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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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