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남성성 속 소년의 남자되기 프로젝트

보이즈어프레이드를 통해 보는 유약한 현대인

by 한대웅

보는 두렵다. 죽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선 장남인 보가 참석을 해야하기에 보는 발길이 급하다. 떠나는 보의 여정은 두렵고 불안한 일들만 가득하다. 왜인지 모든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는 거 같고, 모든 안좋은 일들은 다 보에게만 일어나는 거 같다. 어째서 보에게만 그런 일들이 벌어나는 것일까?

보는 무력한 현대인을 상징한다. 보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무력하고 자주적이지 못한다. 주위를 의심하며, 두려움으로 가득차있다.

보의 이러한 행동은 방어기제로 설명되어진다.

영화 중간 보는 한 남자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한편을 보게 된다. 극의 진행이 끝나갈 때 보는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라 확신한다. 하지만 이야기 속 남자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던 반면, 보는 이성과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자였기에, 그가 연극 속 등장 인물에게 자아의탁을 하는 과정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보의 이러한 감정이입은 방어 기제 중 심리투사로 설명된다. 심리 투사는 본인의 욕망이나 충동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보는 연극을 보며 자신의 이상과 욕망을 연극의 주인공에게 투여한다. 영화 속 연출에서도 연극의 주인공의 얼굴은 교묘하게 연극 속 주인공의 배역을 맡은 배우에서 중간에 보로 대체된다.

그렇기에 연극의 내용은 보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편집된다.

일례로 소설가인 카뮈는 연극 속 연기를 하는 사람은 배우가 아닌 관객이라고 서술한 적이 있다. 보는 누군가의 창작물인 연극에 자아를 심는다. 본인의 자아를 심어 우상화 된 존재를 응원하는 이러한 자아의탁 과정은 본인의 안정을 주긴 커녕 감정과잉으로 이끌어진다. 자신만의 형상을 만든 시점에서 존재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상징으로서 만 기능하게 된다. 그렇기에 자신이 우상화한 그 존재가 피해를 입을 경우 마치 자신이 비극을 겪은 것 마냥 슬퍼하고 좌절해진다.

보가 정신과 상담의 조언과 인터넷의 짧은 지식을 보고, 약을 물 없이 먹어 죽는 줄 알고 불안에 날뛰며, 마치 벼랑 끝에 있는 사람처럼 물을 사오는 장면은 정보 습득에 순종적인 현대인의 상징처럼 보여진다. 보의 행동에는 주도성이 없다. 그의 행동에 기인하는 모든 행동은 전부 ”엄마, 상담사, 혹은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라는 다소 물음이 드는 동기가 그의 행동의 시발점이다. 이에 대해 심리학에서는 선택적 주의라고 설명한다. 선택적 주의란 순간마다 지각을 하는 우리가 여러 가지의 해석이 가능함에도 한 가지만 선택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현대 사회 속 정보의 풍족함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에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맞다고 느끼는 정보에 순종적으로 습득하는 현대인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정보의 풍족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메신저의 말만 순종하기에 주도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일레인과 보의 첫키스때도 일레인의 닦달이 있기 전까지 키스를 하고파도 못하는 보의 모습은 영화 속 엄마로 대표되는 메신저의 허락이 없었기에 키스를 하지 못하는 메신저에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주도적인 사고를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로 통해서 영화는 표현하려 한다.

보는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보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서 자주적으로 살아가고 싶어라 하기 보다는, 일레인이라는 어린 시절 첫사랑을 기억하며, 그녀에게 돌아가 그녀에게 의존 받기를 바란다.

영화 속에서는 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물은 주로 보가 두려움으로 가득차여져 있을 때 심신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많이 사용된다. 문학 속에서 물을 여성성으로 비유해 성스러운 생명력을 나타내는 반면, 영화 속에서는 물의 여성성으로 주인공이 여성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물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앞선에 말한 여성성이라는 개념은 주로 영화 속 보의 어머니의 형태로서 표현된다. 일례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며 욕조에 들어가 안정을 취하는 모습은 보가 여성(어머니)에게 느끼는 안정을 보여주며, 보가 물없이 알약을 먹으면 죽는 줄 알고 필사의 질주를 보이는 장면은 여성(어머니)에 대한 집착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물의 파도들은 보가 가지고 있는 여성(어머니)에 대한 생각의 휘둘림이나 혼동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잔잔한 물결에서 파도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는 여성들에게 의존하지만(영화 속 에선 엄마로 대표되는) 동시에 불신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내제하고 있다. 이러한 욕망은 어린 시절 돌아가셨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모습을 동경하는 보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보는 어린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였기에, 아버지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돌아가셨다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찾으려 하며, 아버지를 찾으면 자신의 불안이 해결될 거라 믿는다. 영화 속 시각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집 속 가장 구석진 다락방에서 보가 아버지를 독대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거대한 남성의 성기모양을 한 괴물로 묘사된다.

어머니의 화려한 집 속 가장 구석진 다락방 아버지의 모습이 거대한 성기 모양으로 나타낸 것은 보의 욕망이자 두려움이다. 여성성으로 둘려 쌓인 안정된 공간 속 마음 한켠에는 남성성을 표출하고자 하는 보의 욕망이 내제되어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와의 유대가 없어 남성성을 보는 모르기에 보가 생각하는 남성성은 다소 과격하고 뒤틀리고 두렵다. 그렇기에 다락방처럼 마음 한켠에 숨기며 살아간다.

보의 이야기는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쓰럽다라는 감정이 들기 마련이다. 이는 보의 이야기가 단순히 극 속의 이야기가 아닌 영화적 표현으로 과장된 형태로 나타난 현대인이기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보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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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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