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를 통해 본 영화와 꿈
“영화는 꿈이란다, 잊히지 않는 꿈” 스필버그의 영화 파벨만스 속 대사이다. 영화의 역사가 계속되면서, 영화라는 매체의 방향성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가 존재했지만,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 휴고를 통해 영화 산업 초기 꿈이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을 실체화 시킬려고 노력한 제작진들의 뜻을 조명하면서 영화의 존재 이유를 조명한다.
주인공인 어린 휴고는 열차역 안에 있는 시계탑 속에 혼자 살아가며, 죽은 아버지의 로봇인형을 수리하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일련의 사건들이 지난 후 로봇을 고친 휴고는 이 것이 괴팍한 줄만 알았던 역안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조르주 할아버지의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고, 의미를 찾기 위해 조르주 할아버지에게 찾아간다. 조르주는 이 것이 자신이 젊은 시절 만들었던 작품인 “달세계여행”이란 것을 깨닫고.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영화 속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감독은 영화를 전승되는 꿈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꿈은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대를 전승해서 전해지기도 한다. 마치 조르주가 어릴적 만들었던 작품을 보고 아버지와의 유대감을 떠올리면서 로봇인형을 고칠려는 꿈을 가진 휴고나, 그러한 꿈을 통해 휴고가 풀어낸 자신의 작품을 보며, 자신의 어릴 적 꿈을 반추하는 조르주처럼 말이다. 또한 작 중 직접적인 연결은 없었음에도 어린 시절 조르주의 작품을 보며 꿈을 키운 작가인 르네 역시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열차역은 다양한 출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열차역 속 열차는 마치 대사를 통해서도 또 시퀀스를 통해서도 직접적일 정도로 최초의 영화 중 하나인 “열차의 도착”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는 3d로 만들어져 개봉 당시에도 3d효과를 잘 살렸다고 평가 받았었는데, 열차의 도착이 개봉당시 관객들이 실제로 열차가 화면을 뚫고 나오는 줄 알아 극장에서 도망쳤다는 유명한 일화는 이 영화가 화면이 튀어나오는 3d포멧으로 개봉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였을 때 다소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다양한 사람들은 영화라는 한 매개체를 향해 하나로 유대하게 된다라는 것을 설명한다. 영화의 결말부 열차역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끝난 후 같은 장소에서 논평을 하는 장면은 영화는 출신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모두가 꿈을 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시계탑은 다양한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부품들은 서로를 연결 시켜주면서, 각각의 역할을 기능하며 하나의 시계탑을 완성시킨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부품으로서 본인을 부정하지만, 감독은 휴고에서 부품으로서의 긍정을 나타낸다. 이를 사회학자인 뒤르켐은 유기적 연대라 정의한다. 과거 공동체를 중심으로 집단에 대한 개인의 희생을 중점하였던 기계적 연대와 반대되게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며, 이러한 개인성의 증대로 인해 이질성이 증가하지만 이러한 이질성이 집단간의 결속 약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이질적인 개인들의 상호의존성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시계탑이 있는 열차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 나이 성별 출신 등 다양한 사람들은 각자 추구하고 사고하는 것이 다르지만, 누군가는 역을 지키며, 누군가는 역에서 꽃을 팔며 활기를 더해가고, 누군가는 책을 팔며 역안 사람들에게 지식을 선물한다. 이러한 각각의 다른 목표들은 역안을 구성하며, 시계탑 속 다양한 부품들이 시계탑을 완성시킨 것처럼 각각의 다양한 사람들로 인해 기차역을 완성시킨다. 역안에 사람들은 그러한 부품 속 자신을 낙담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동시에 개인의 가능성을 추구하며 각자의 꿈을 가진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꿈을 역 검사관으로 나온 등장인물에게 짝사랑이라는 형태의 꿈을 주면서 그러한 꿈을 가능케 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본인이 변화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을 나타내고 있다. 조르주가 영화를 상상과 이야기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며 영화를 발전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이사벨이 휴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내용을 관객들에게 들려주면서 극을 마무리 하는 장면은 휴고와 이사벨이 조르주의 기록된 영화를 보면서 그의 꿈을 느끼면서 자신만의 꿈을 가졌던 거처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 또한 기록되어 지는 휴고의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만의 꿈을 가지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의 가장 최고의 기술력인 3d를 현대의 관객들에게 선보여 과거의 관객들이 영화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때의 놀라움을 재현할려는 감독의 의도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러한 애정은 영화의 곧곧에 녹여져있다. 시계탑에 매달리는 휴고의 모습은 바스터 키튼의 안전불감증 속 상징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하며, 일전에 언급했듯이 열차역 속 열차는 최초의 영화로 불려지는 열차의 도착이 떠오르는 부분 등등 중간중간 감독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공적인 스콜세지의 영화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평은 영화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장이다. 영화는 감독의 개인적인 애정임과 동시에 모든 영화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영화의 애정을 꿈이라는 키워드로서 공감대를 형성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