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타이밍

머터리얼리스트를 통해 본 결혼과 선택

by 한대웅

제목부터 노골적인 속물성을 숨기지 않는 이 영화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인류 보편의 테마를 다루되, 이를 더 이상 신성한 낭만의 영역에 두지 않는다. 영화는 결혼을 운명적인 서사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불안과 계산의 문제로 치부하며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여기서 결혼은 영혼의 단짝을 찾는 여정이 아니다. 그것은 기막힌 타이밍의 산물이며, 정교하게 짜인 조건의 합치이고, 서로의 결핍을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협상 테이블에 가깝다. 영화는 시종일관 묻는다. 사랑만으로 충분한가? 혹은, 사랑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가?



“왜 사람들은 결혼을 할까?”

“아마 간절하고, 아직 희망에 가득 차 있으니까”

이 영화의 미덕은 결혼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선택을 하는 인간의 의지를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돈과 조건을 따지는 속물적인 순간들 속에서도 인물들은 끝내 무언가를 붙잡으려 분투한다. 누군가는 지독한 외로움 끝의 사랑을, 누군가는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미래를, 또 누군가는 적어도 이 세상에 혼자는 아니라는 안도감을 기대한다. 영화는 그 기대가 얼마나 위태로운 계산 위에 놓여 있는지를 가감 없이 폭로하지만, 그 계산기를 두드리는 손길을 부끄러운 것으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간절한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인간이라는 증거임을 묵묵히 증명해 낸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가난한 사람의 포르노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타인의 욕망과 실패를 관음적으로 소비하며 감상적인 위안을 얻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비판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계급의 격차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타인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는 것은 분명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시니컬함이 지성의 척도이자 미덕처럼 추앙받는 이 시대에,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계산의 세계 한복판에서 인간의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시선은 차라리 귀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비극의 필연성을 논할 때, 누군가는 그 비극 속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온기를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이 영화가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 완벽하다거나 대중 모두에게 선뜻 권할 만한 수작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주저함이 남는다. 하지만 감독 셀린 송은 자본주의, 계층, 욕망이라는 날카롭고 서늘한 칼날을 쥐고서도, 굳이 ‘머리가 텅텅 빈 사람들’이라 냉소받을 법한 이들의 낭만을 향해 잔을 들어 올린다.

그 선택은 영리하지 않을 수 있다. 세련된 비평가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투박한 고집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무모함에 분명한 가산점을 주고 싶다. 타인의 삶을 쉽게 재단하지 않고, 그 안의 진심을 소통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태도는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머니 속의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해 보지 않으려 애쓰는 세상에서, 끝까지 “그래도 믿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감독. 그것이 내가 여전히 셀린 송이라는 이름을 신뢰하고, 그녀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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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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