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으로 보는 인류역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아버지를 죽이고 태어나는 아들이라는 원형 신화를 근대 과학의 언어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창조라는 행위를 통해 신, 즉 창조자의 자리를 찬탈한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인 크리처를 두려워하고 부정함으로써 아버지 없는 자식을 탄생시킨다.
이때 크리처는 자신을 창조하고 버린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과, 동시에 그 부재를 애도하고자 하는 상반된 욕망 속에서 고통받는다. 그는 아버지의 부정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존재의 근거를 찾아 헤맨다. 따라서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는 창조자의 부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주체로 성장하고 존재를 확립해 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이 신(부모)의 권위를 넘어설 때 맞닥뜨리는 근원적 고독과 책임, 그리고 아버지 없는 세계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가야 하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드러낸다.
본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류 문명의 가장 중요한 서사가 곧 ‘아버지 살해’로부터 발원하였다는 근원적인 가설을 제기하였다. 이는 그의 저서 토템과 타부(Totem und Tabu)에 명징하게 새겨진 명제로서, 과학적 진실이라기보다는 인간 존재와 문화의 구조를 해명하는 데 사용되는 심오한 문화적 비유의 성격을 지닌다.
이 가설에 따르면, 원시 부족의 젊은 아들들은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원시 부족의 수장)를 합동으로 살해함으로써 원초적 무리의 질서를 파괴한다. 그러나 이 금기를 깨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질서, 즉 문명의 시발점이 된다. 아버지를 제거하여 자유를 획득하는 순간, 그들의 내면에는 엄청난 죄책감이 싹트기 때문이다. 이 죄책감이 곧 사회적 금지와 윤리, 그리고 법의 근간을 이루며, 인간을 자연 상태에서 문화 상태로 이행시키는 결정적인 동력이 된다. 프로이트는 이 과정을 통해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인간은 문명을 얻고, 죄책감으로 윤리를 만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원형적 서사는 단순히 인류의 기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곧 한 개인이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독립하여 성숙한 사회적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 즉 아들이 아버지의 권위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려 투쟁하는 (이제는 다소 진부한 비유인)오이디푸스적 갈등의 반복으로 나타난다. 여성(어머니)을 향한 욕망으로 비롯된 이 갈등은, 결국 아들 세대가 기존 질서(아버지의 법)에 저항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보편적인 드라마를 형성해왔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크리처는 바로 이 프로이트적 원형 서사를 그 몸으로 체험하는 존재이다.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의 권능으로 창조된 그는, 세상에 던져진 순간부터 어떠한 윤리적 규범이나 사회적 법률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연 상태의 존재다. 그러나 창조주 빅터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존재의 이유와 사랑을 거부당하는 과정에서, 그는 근원적인 고독과 분노를 내면화한다.
크리처의 행위는 복수심으로 치부될 수 없다. 그가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프랑켄슈타인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행위, 즉 아버지 살해를 감행하는 것은 그 자신의 비극적 운명 속에서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했던 통과 의례인 것이다. 이 파멸적 행위는 그를 피조물(객체)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하는 첫 번째 윤리적 도약이다.
아버지를 살해하는 행위는 크리처에게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복수심의 해소가 아닌, 심연과도 같은 죄책감과 비로소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계기로 작용한다. 죄책감은 곧 법과 윤리의 내면화 과정이며, 이 순간 크리처는 비로소 외부로부터 부여된 괴물이라는 명칭을 넘어 스스로를 규정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크리처는 아버지를 죽이는 금기의 위반을 통해 스스로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그 결과로 얻게 된 죄책감과 자기 인식을 통해 문명적 주체로 각성한다.
결국 이 괴물은 프로이트가 제시한 문명의 기원적 모델, 즉 '아버지 살해'를 경험하고 그 죄책감을 통해 윤리를 창조해낸 문명의 최초 인간을 은유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의 비극적 여정은 곧 인간 존재가 태어날 때부터 짊어져야 했던 원초적 죄의식과, 그 죄의식을 딛고 법과 윤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문명적 운명을 몸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크리처의 절규는 곧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모든 인간의 비명이자, 자기 존재의 근원을 묻는 영원한 질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