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맥질하는 동물들의 자유의 길

플로우를 통해 보는 자유와 연대

by 한대웅

광할하지만 허망해 보이는 정글 속, 주인공인 고양이의 보금자리는 자신과 비슷하지만 거대하며 웅장한 고양이들의 석상이 배치되어있는 폐허이다. 어느날 대홍수가 덮치고 고양이는 보금자리를 잃으며 생존을 위해 배에 올라타고, 이제 고양이는 같이 배에 탄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과 뒤섞여가며 지내야 한다.

단순한 이야기인 만큼 영화의 메시지도 명확하다. 연대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다. 영화 속 동물들은 기존의 영화와 다르게 행동이나 습관이 의인화 되지 않은 가장 동물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없으며, 그들의 표정은 무표정이면서 1차원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몸짓을 할 뿐 그들의 감정변화는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영화 속 동물들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모습을 띄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정체성은 연대를 통해서 완성된다.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 고양이는 자신의 집 근처 자신과 비슷하지만 거대한 고양이 석상을 두며, 넓은 페허 속 가장 높은 자리에 누워 잠이 든다. 거대한 석상을 우러러 보는 고양이는 석상을 간접적으로 우상화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고양이 석상은 고양이의 우상이며 높은 자리에서 자는 모습은 이상이다. 그런 우상화가 된 존재와 이상화된 높은 집이 대홍수로 인해 물에 잠기자 고양이는 바다를 표류한다. 영화가 진행 될수록 고양이의 우상화는 무너져 내리며 덧 없음을 느낀다. 자신의 조그만한 체구와 대비되는 거대한 건물과 그를 둘러싼 도시, 언뜻 보면 위대한 존재로 보이는 거대한 고래까지 결국 자연의 흐름에 따라 쇠태하고 무너져 내린다. 허무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과정 속 영화는 단순한 이상적 존재의 허무로 인한 낙담과 냉소로서 끝내진 않는다.


원숭이에게 손거울이 놓여진 순간 원숭이는 손거울에 집착을 한다.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은 주인공인 고양이와 다르게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한 무리와 섞여 지내며, 떠돌아다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에는 충동성이 있을 뿐, 뚜렷한 목적성은 보이지 않는다. 대홍수가 일어나고 자신들의 무리와 떨어지면서, 원숭이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은 대홍수로 인해 자신과 다른 존재를 만나기 시작한다. 손거울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물체이다. 원숭이는 처음으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무리의 맹목성에 따랐던 원숭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영화 속 대홍수로 인해 다양한 동물들이 어떠한 배를 타고 여정을 타는 모습은 어쩌면 노골적으로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노아의 방주가 인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구원의 형태로서 기능하였기에, 영화 속 동물들의 여정은 그들에게 있어 구원의 길인 것 이다. 우상적 존재 및 단체에 대한 맹목성에 관한 덧없음을 뒤로하고 그들은 생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연대해 나가며 살아간다. 이에 대해 헤겔은 자유와 연관해 서술한다. 헤겔은 참다운 자유란 “타자에서 자기 자신으로 머무름”이라 정의 내렸다. 다소 모호한 말이지만 이는 결국 타자를 중심으로 즉 관계성에 입각하는 자율을 내포하는 말이라 정의할 수 있다. 타자에서부터 오는 자율은 갈등을 배제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자연적인 상태에서 자율을 쟁취할 순 없다. 여기서 필자는 갈등의 긍정이나 갈등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자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갈등과정을 포함한 유기적 연대를 통해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연대이다. 이러한 연대의 과정이 투쟁으로 볼 수 있을지 연정 결국 삶의 유한성 속 가치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이루어지며, 이는 곧 연대적 자유 즉 자율성을 가진 주체성이라는 결론으로 완성되는 것 이다.


영화의 마지막 대홍수가 꺼지며 동물들은 각자의 무리로 돌아가지만, 자신들과 같이 표류하였던 카피바라가 절벽 위에서 위기를 겪는 것을 발견하며, 구하기 위해 서로 연대하며 카피바라를 구해준다. 그러한 과정 속 그들은 자신의 기존의 무리를 떠난다. 결국 그들은 연대를 통해 같이 카피바라를 구한다. 무언가의 우상화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되고팠던 고양이나 기존 무리에 종속되면서 주체성을 포기한 나머지 동물들은 카피바라를 구함으로서 스스로를 구원함과 동시에 자율성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결국 영화는 위대해 보이는 개개인의 존재나 결속된 단체가 아닌 함께 하는 연대적 존재들만이 무언가 위대한 일 혹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여준다.


common.jpg


수, 금 연재
이전 01화아버지 살해의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