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빛

콘클라베를 통해 보는 믿음과 희망

by 한대웅

전작인 서부전선 이상 없다로부터 약 2년 만에 나온 작품인 에드워드 버거의 콘클라베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교황청으로 옮겨 믿음과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을 배경으로, 젊은 세대가 선택권 없이 전쟁에 휘말리며 희망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려내며, 등장인물들은 전쟁이라는 압박 속에서 끊임없이 싸우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무력감에 빠져든다. 그들은 실질적인 선택권이 없었고,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콘클라베는 앞선 작품과 대조되게 폐쇄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무대는 교황 선출이라는 중대한 사건이고, 등장인물들은 선택권을 가진 기득권 세력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황을 조종하며, 무언갈 변화시킬 권력을 쥐고 있다. 그 중심에서 갈등을 겪는 인물은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로렌스 추기경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반복된 실망과 규율에 의해 의심과 무력감에 사로잡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희망을 찾기 위해 의심이라는 믿음과 다소 상반된 개념으로 변화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가며 동시에, 내면의 갈등을 해소하려 한다.

영화의 핵심적인 테마는 '벽'과 '빛'이다. 로렌스에게 벽은 물리적인 공간이자, 동시에 로렌스 가 마주하는 정치적, 종교적, 심리적 장벽이기도 하다. 그는 외부의 압박과 내부의 의심, 과거와 현재의 갈등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벽에 금이 가는 순간 빛이 들어오듯, 그는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로렌스는 처음에는 정치적, 종교적 제약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려 한다. 그가 처한 상황 속 교황 선출을 둘러싼 권력 다툼은 그가 신념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니면 교회의 기존 질서와 타협해야 할지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된다. 교황 선출 과정은 그 자체로 복잡한 정치적 음모와 전통의 충돌을 내포하고 있으며, 로렌스 추기경은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자신의 내면과 싸운다. 그는 교회의 교리와 세속적 권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의심과 무력감이 점차 커져만 간다.

자연스레 로렌스는, 그가 속한 교회의 세계가 더 이상 유효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그가 겪는 갈등은 교황 선출이라는 사건에 국한되지 않으며, 그는 교회가 안고 있는 부패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다고 본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에게 큰 내적 혼란을 가져온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상반된 가치들이 얽힌 벽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자신의 신념이 진정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질문에 직면한다. 하지만 그가 점차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가 마주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교황 선출을 둘러싼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가 궁극적으로 깨닫는 것은,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단지 권력의 이동이나 교회의 내적인 정체성 변화가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인간의 내면을 진지하게 또 새롭게 바라보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로렌스는 그동안 교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이익 다툼을 뚫고 나아가, 결국은 그 외부에서 온 변화의 신호를 받아들인다. 그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빛’이다. 금이 간 벽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순간, 그는 그가 마주하는 '벽'이 그를 가두려는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그가 내면에서 만들어낸 고립과 의심의 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폐쇄된 공간과 늙은 남성들만 모인 교황 선출의 자리에서 나온 로렌스 추기경에게 들려오는 것은 여성들의 웃음소리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공간 속에서 로렌스가 꿈꾸던 희망은 결국 외부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에너지와 함께 찾아온다.

우리는 금이가면 그것이 결핍처럼 여겨지지만, 어쩔때는 그 금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구원의 손길처럼,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을 알린다. 로렌스는 그 금을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고독과 갈등을 넘어서는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길, 바로 내면의 어둠을 헤쳐 나가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와 신념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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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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