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통해 보는 대도시와 사랑

by 한대웅

대도시에 산다는 건, 때때로 자신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만든다. 수백만 개의 창문, 끝없이 이어지는 발걸음들 속에서 내 하루는 마치 흩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뭄바이, 혹은 서울, 뉴욕, 도쿄. 이름만 다를 뿐 이 거대한 도시들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그 속에서 내 하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애를 써도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조용히 밀려나버리는 듯한 기분. 그렇게 우리는 묻힌다.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바로 그 묻힌 삶의 틈새를 마주한다.

영화는 소리 없이 도시를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의 시선을 따라간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그들의 하루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고단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도시에 묻힌 우리 모두의 초상처럼 느껴진다.

“대도시의 반복되는 일상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아.”

주인공 중 한 명인 프라바는 병원에서 일하며 남편과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반복되는 일상 속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남편이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써 오히려 자신만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형식만 남은 결혼 생활은 이제 그녀를 더 이상 타인의 기대나 요구에 얽매어 두지 않는다. 프라바는 과거의 껍질을 벗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삶을 새로 써내려 가려고 한다.

아누는 간호사로 일하며 무슬림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사회의 시선 속에 그 사랑을 숨겨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누는 바로 그 사랑을 통해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알아간다. 관계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리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간다. 사랑을 숨겨야 하는 상황은 그녀를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외롭고 위태롭지만, 결코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그들은 그 하루를 무료함 대신 '새로 살 수 있는 기회'로 품는다. 그리고 바로 그 조용한 끈기가, 도시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그들만의 빛을 만들어낸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그 이야기 방식에 있다. 거대한 사건이나 뚜렷한 갈등보다는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 인물들의 숨결과 시선, 그리고 도시의 소음을 통해 삶을 직조해낸다. 이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적 허구를 넘어 현실을 응시하게 만든다. 영화는 묻힌 삶을 단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깃든 고요한 힘을 조명하며, 작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어둠을 뚫고, 여전히 빛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순히 꿈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 속에서도 삶을 붙잡고자 애쓰는 존재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어쩌면 진짜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는 그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도시는 어쩌면 우리를 작게 만드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아주 작은 존재도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묻히는 삶 속에서도, 끝내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하는 ‘빛’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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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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